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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홍가혜가 겪은 ‘악플 무간지옥’…“그 글이 누군가엔 죽음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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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잠수부 홍가혜씨가 겪은 악플

시계 5년 전으로 되돌린 ‘설리의 죽음’

악플과 언론 공생에 만신창이 삶…기사 하나씩 보며 상처 되살아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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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하나씩 하나씩 봤어요. 그 시간 동안 하나씩 하나씩, 제 아픔도 되살아나는 것 같더라고요. 트라우마가 떠올라 온몸이 경직될 정도로 아팠어요.”

긴 침묵과 피를 토해내는 듯한 열변이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됐다. 홍가혜(31)씨는 14일 세상을 등진 설리(본명 최진리·25)를 떠올리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방송 인터뷰에서 해경의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가 단박에 ‘공공의 적’이 됐던 홍씨는, 악플의 무간지옥에 빠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서리쳐지도록 잘 알고 있다. 악플(악성 댓글)과 자극적인 인터넷 뉴스, 포털 실시간 검색어의 공생 구조 속에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온몸으로 겪었다.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사이 소중한 새 생명도 얻게 됐지만, 설리의 소식은 다시 그의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놨다. 지난 16일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난 홍씨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몸까지 아픈 건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 이후로 처음”이라고 말했다. 온 국민이 그를 ‘허언증 환자’로 낙인찍은 것은 물론이었고, 수치심을 자극하는 성희롱 댓글들도 감내해야 했다. 홍씨는 “‘홍가혜 몸매’ ‘홍가혜 사이즈’ 등의 연관 검색어를 일일이 포털에 요청해 지웠다”고 했다. “그런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죽을 만큼의 돌이에요. 상대방도 그렇게 돌을 던지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 던지는 거죠.”

수많은 악플에 시달리며 홍씨도 한때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언론도 그를 ‘허언증’ ‘거짓 인터뷰녀’ 등으로 호명하며 악플을 중계했다. “거짓 인터뷰녀 홍가혜, 수많은 사칭?” 등의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낸 <디지틀조선일보>는 지난 8월 홍씨에게 6천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홍씨는 첫 승리 뒤에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해경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였다. “무죄를 받으면 악플이 멈출 줄 알았는데 계속 달렸죠. ‘너는 허언증이야, 너는 가짜 잠수부야’라고.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생각했어요.”

악플의 트라우마는 삶 전반에 외상을 남겼다. 집 앞에도 나가기 힘들어 등산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실신하기 직전까지 운 기억도 있다. 홍씨는 “2014년 이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고도 털어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먼저 상대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명하게 돼요. 어딘가에 내 이야기를 했다가 그걸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말하기 힘들고요. 사람들은 항상 최선을 선택하며 살지만 나는 항상 차선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요. 설리는 더 힘들었겠죠.” 그가 ‘또 다른 고통을 견디는 이들에게 도움이 돼달라’는 <한겨레>의 인터뷰 제안을 숙고 끝에 받아들인 까닭이다.

홍씨는 특히 악플과 언론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도 입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약해졌던 때가 있지만 비용이 부담돼 심리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후유증은 오래 남았다. 설리의 소식 뒤엔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운전도 할 수 없다. “언론에서도 저를 ‘투사’나 가여운 사람으로만 다뤄요. 왜 아무도 나에게 치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주지 않는지 답답해요. 저 같은 피해자들을 국가가 방치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 숱한 모욕을 당하고도 홍씨는 “처벌과 규제 강화가 답은 아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악플러들을 고소해보니 처벌이 약한 건 맞아요. ‘당신 애가 이런 악플을 받으면 이렇게 면죄부를 줄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와요. 그게 저의 절절한 심정이죠. 하지만 형사처벌과 규제가 강화되면 결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고, 진보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요. 사회라는 건 결국 연대책임이잖아요.”

홍씨는 내년 초 성평등 강사 자격증을 딸 계획이라고 했다. “제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는데, 그렇다면 ‘외상후성장’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가 피해자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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