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수요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노선이 급격히 늘어날 경우 출혈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초 공급 과잉으로 출혈 경쟁이 이뤄지던 일본 대신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치킨게임(죽기살기식 경쟁)이 예고된다는 분석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본 노선에서 뺀 항공기를 그냥 세워둘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항공 자유화 협정을 체결한 지역 위주로 노선을 늘리는 것"이라며 "중국, 동남아 수요가 충분해서 신규 취항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난 9월 인천국제공항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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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 동안 베트남 운항편은 출발과 도착을 포함해 3318편으로 작년 9월 2900편 대비 14.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을 오간 여객 수는 51만8609명에서 59만173명으로 13.7% 늘었다. 베트남 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항공사 노선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빠른 셈이다.
태국도 공급 증가량이 수요 증가량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인천공항에서 태국을 오간 운항편은 1406편으로 지난해 9월 1223편 대비 14.9% 증가했다. 반면 승객 수는 26만3913명에서 30만509명으로 13.8% 늘어나는데 그쳤다. 중국과 대만은 아직까지 여객 증가율이 항공 운항편 증가율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들이 11월 이후 신규 취항을 대거 준비하고 있는 만큼 공급 증가가 예상된다.
특히 일본에 집중했던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앞다투어 중국‧대만‧동남아 노선을 늘리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10~11월 대만에서만 4개 노선을 선보인다. 인천~화롄, 인천~가오슝, 부산~타이베이, 부산~화롄 등 신규 노선을 취항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6일 인천에서 출발하는 중국 정저우 노선도 신규 취항했다. 에어서울은 12월 인천에서 베트남 하노이·나트랑 신규 취항을 준비 중이다. 에어부산도 11월 인천으로 진출해 대만 가오슝 노선을 개설한다.
대형항공사(FSC)도 일본 대신 중국, 대만, 동남아 노선 깔기에 분주하다. 대한항공은 10월 말부터 필리핀 클락, 중국 난징‧장자제‧항저우 등 4곳에 신규 취항한다. 일본 노선 수요 감소로 인한 축소된 공급력을 동남아‧중국으로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도 인천~가오슝(대만) 부정기편을 정기노선으로 전환한다.
에어부산 항공기 /에어부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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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으로 신규 취항이 몰리면서 특가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신규 취항하는 대만 4개 노선에 대해 특가 항공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편도총액운임 기준으로 부산~타이베이 티켓 가격을 6만9900원부터 살 수 있다. 에어서울은 인천~나트랑(베트남) 티켓을 편도 6만7700원부터 제공한다. 에어부산 역시 신규 취항 기념으로 인천~가오슝(대만) 편도 항공권을 4만9900원부터 판매한다.
항공업계에서는 중국‧동남아 지역 여객 수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탄탄한 편이지만, 신규 취항이 급속도로 늘어날 경우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여행지가 개발돼 신규 노선이 취항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선에 증편하는 방식으로 공급 조절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8개 국적항공사는 일본노선 공급을 적극적으로 축소하고 있지만, 수요가 더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며 "대체 노선 효과를 기대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 탑승률과 운임 하락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저비용항공사들은 일본노선 부진에 따른 영향 뿐 아니라 단거리노선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조지원 기자(ji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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