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사회부 기자 |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하고 있다니까요.”
기자와 최근 전화통화를 한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 원장 A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A 씨의 병원은 작년 한 해 동안 80여 명의 ‘행정입원’ 환자를 받았다. 행정입원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지방자치단체장의 결정으로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제도다. 그런데 A 씨는 행정입원 환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손해가 나 난감하다고 했다. 지난해 이 병원이 행정입원 환자들한테서 받지 못한 본인 부담금만 1억 원에 이른다.
경남 진주시에서 있었던 ‘안인득 방화·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안인득이 강제입원을 비켜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강제입원, 특히 행정입원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정신건강복지법상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입원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지원에 소극적이다. 서울의 한 정신병원 관계자는 “행정입원 환자 1명당 210만 원 정도의 입원비가 들지만 지자체 지원금은 40만 원뿐이라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행정입원 환자가 부담스러운 병원들은 ‘응급입원’ 환자도 꺼린다. 응급입원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의사와 경찰관이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다. 정신건강복지법상 응급입원 환자는 입원 후 3일 이내에 행정입원 등 다른 유형의 입원으로 전환하거나 퇴원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3일 안에 증세가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행정입원으로 전환된다. 응급입원 환자를 많이 받을수록 행정입원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경기 평택시에서는 조현병을 앓는 B 씨가 분무기에 락스를 넣어 행인들의 얼굴에 뿌리는 일이 있었다. B 씨는 당장 응급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0번째로 찾은 병원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에서도 조현병을 앓는 C 씨가 길거리에 소화기를 뿌리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부린 일이 있다. C 씨 역시 3번째로 찾은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장 A 씨는 “경영자 시각에서 보면 행정입원 환자를 받으면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라는 생각으로 환자를 받는다”고 말했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사회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손해를 감수하는 일부 병원에 기댈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안인득’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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