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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매경춘추] 슬픈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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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어린 시절 들었던 에밀레종에 얽힌 전설. 시주를 구하는 승려에게 가진 것 없던 가난한 여성은 필요하면 자식이라도 주겠다는 호언을 한다. 그러다 결국 종의 완성을 위해 주물 속에 아이를 넣게 된다는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슬픈 사연. 심청이는 인당수에 뛰어들지만 연꽃이라는 불교적인 재생의 모티브와 함께 되돌아와 해피엔딩 한다. 그러나 에밀레종에서는 완성되는 종 속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깃들어 있다는 새드엔딩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사실일까? 에밀레종의 명칭은 성덕대왕신종이다. 33대 성덕왕은 통일신라를 반석 위에 올린 성군이다. 이런 부왕을 위해서 효성왕이 추모물인 범종을 주조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종의 완성은 손자인 혜공왕 대에야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인신공희 전설은 일견 타당성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구성요소는 대다수가 수분 즉 물이다. 주물에서 가장 피해야 할 대상이 수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사실 이 전설은 종이라는 한자와 관련된다. 과거 지식인들은 한자를 쪼개고 합치는 측자파자(測字破字)라는 말장난을 즐겼다. 순천 송광사(松廣寺)에는 18분의 국사가 난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송(松)자를 깨트리면 '十+八+公'이 되기 때문이다. 조광조와 관련된 '주초위왕(走肖爲王)'도 마찬가지다. '走+肖=趙(조)' 즉 조광조가 반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종의 한자는 '鍾'과 '鐘'의 두 가지다. 종(鐘)은 '쇠 금(金)+무거울 중(重)'으로 금속으로 된 물건 중 종이 가장 무겁다는 의미다. 고대에는 종보다 무거운 금속 물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종(鐘)은 '쇠 금(金)+아이 동(童)'이다. 종은 우렁차게 울리는 악기이므로 잘 우는 아이를 빗댄 것이다. 즉 전자가 질료의 특성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악기로서의 기능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鐘) 글자를 시각적으로 보면, 아이가 금속 속에 들어가 있는 형상이다. 바로 이것이 스토리텔링 되면서 에밀레종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비극에 보다 크게 감동하며, 깊은 여운을 간직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전설이 되고, 다시금 우리의 정감을 적시는 낭만적인 미감이 되는 것이다.

[자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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