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미국이 EU로부터 수입하는 항공기에 10%, 농산물과 공산품을 포함한 다른 품목에는 25%의 관세를 10월 18일부터 부과하기로 했다. 관세 부과 대상에는 EU산 치즈, 올리브, 위스키 등이 포함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수년간 유럽은 에어버스에 막대한 보조금을 마련하면서 미국 항공 산업과 근로자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유럽의 불법 보조금에 대한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WTO가 최종 확정했고 10월 18일부터 WTO 승인 관세를 EU 상품에 부과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미국의 징벌적 관세 부과 방침에 EU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이 실제로 ‘액션’을 취한다면 맞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통상담당 EU 집행위원은 “미국이 WTO가 승인한 대응 조치를 이행한다면 EU도 똑같은 조 Z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WTO 승소하자 다시 EU 공격
글로벌 ‘경기 침체 공포’ 확산될 우려
10월 18일 미국이 징벌적 관세 부과를 실행에 옮기면 사실상 1년 넘게 유지돼온 미·EU 간 무역전쟁 휴전이 깨진다. 미국과 EU는 그동안 다소 불안하지만 무역전쟁 휴전을 유지해왔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6월 1일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 관세를 부과하며 EU에 대한 무역전쟁을 개시했고 EU도 미국산 청바지, 오토바이 등 32억달러에 대해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면서 ‘대서양 무역전쟁’이 시작된 바 있다.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7월 25일 만나 관세 철폐를 위한 무역협상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휴전’에 합의했는데 이번에 그 합의가 깨질 위험에 처했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EU 간 ‘대서양 무역전쟁’마저 재개된다면 ‘R(경기 침체·Recession)’의 공포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 미·EU 무역전쟁 재개 → 보호무역주의 확산 → 글로벌 무역 감소 → 세계 경제 침체’ 악순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비교적 낮게 관세율을 정했다는 점이다. USTR은 “WTO 결정은 관세율 100% 부과를 허용하지만 항공기에 대해서는 10%, 농산물과 다른 품목에 대해서는 25%로 제한했다”고 밝혔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한편 미국의 징벌적 관세 부과 근거는 WTO가 지난 10월 2일 EU가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한 책임을 물어 미국이 연간 75억달러 규모의 EU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승인한 데 따른 것이다. 에어버스 보조금을 둘러싸고 미국과 EU는 15년간 WTO에서 공방을 벌여왔는데 WTO가 이날 미국 측 손을 들어줬다. 미국은 2004년 EU의 보조금 지급이 WTO 협정에 위배된다며 제소했고, WTO는 EU가 1968년부터 2006년까지 에어버스에 18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판정했다.
다만 여기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EU도 미국 항공사 보잉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WTO에 제소했고 그 결과는 내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EU 역시 미국에 징벌적 관세를 물릴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면 ‘대서양 무역전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주요 대미(對美) 무역흑자국들을 대상으로 ‘관세 폭탄’을 부과하며 시작한 무역전쟁에 대한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오히려 사태는 ‘해결’보다는 ‘악화’ 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뉴욕 = 장용승 특파원 sc20max@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9호 (2019.10.16~2019.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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