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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톈안먼 시위 지지한 베이징대 전 총장 딩스쑨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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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쪽 학자로 유명, 마오쩌둥 손자 입학도 거절

아시아투데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 30년 전 중국 베이징의 심장인 톈안먼(天安門)에서 발생한 학생·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 학자로 유명한 딩스쑨(丁石孫) 전 베이징대학 총장이 지난 12일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3세로 장지는 베이징 소재의 바바오산(八寶山) 혁명열사 능원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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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타계한 딩스쑨 전 베이징대 총장. 톈안먼 사태를 지지한 강골 학자로 유명했다./제공=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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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영 신화(新華)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장쑤(江蘇)성 전장(鎭江) 출신의 고인은 칭화(淸華)대 수학과를 졸업한 유명한 수학자로 당초에는 모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베이징대로 옮겨 은퇴할 때까지 봉직했다. 은퇴 직전인 1984년부터 1989년까지는 총장으로 임명돼 근무했다.

그는 수학자였으나 신념이 분명한 대쪽 같은 인물로도 정평이 났다. 성품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일화는 많다. 1989년 6월 4일 유혈 비극으로 막을 내린 학생·시민들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학생들이 톈안먼으로 달려가 시위에 참가하려 하자 용인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독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그는 사태가 끝난 후 총장에서 해임되는 횡액을 당해야 했다.

이보다 1년 전인 1988년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49) 인민해방군 소장(준장)의 베이징대 입학을 거절한 일화도 있다. 당시 마오신위의 어머니는 딩 전 총장을 찾아가 “내 시아버지는 베이징대 도서관에서 일했다. 나도 베이징대를 졸업했다. 아들은 베이징대 부속고교를 나왔다. 모두 베이징대와 관계가 있다. 아들도 베이징대에서 공부했으면 한다”라면서 특례 입학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건 우연일 뿐이다. 베이징대는 교풍이 자유롭다. 학생들도 자유분방하다. 아드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서 거절한 것이다. 결국 마오 소장은 베이징대 입학에 실패하고 런민(人民)대학 역사학과에 진학해 졸업할 수밖에 없었다.

이외 강골 학자로서의 면모를 수없이 보였던 그는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다. 총장에서 해임되자마자 바로 공산당의 위성 정당인 민주동맹의 주석에 취임한 후 1998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에 해당)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해 부총리급 지도자로 활약했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그 분은 사심이 없었다. 당국에 미운 털이 박혔을지는 모르나 도덕적으로는 완벽했다. 그 점이 높이 평가돼 정치적으로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베이징대 총장 재임 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최고의 총장 중 한 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베이징대 교수 출신의 석학으로 유명한 지셴린(季羨林)은 “베이징대의 총장 중 기념할 만한 학자는 딱 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딩스쑨은 그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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