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건강한 가족] 겉은 멀쩡한데 입안이 화끈화끈? 신경 더 망가지기 전 식히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구강 작열감 증후군

박미순(가명·64)씨는 지난해부터 이유 모를 입병에 시달렸다. 가만있어도 고추를 먹은 것처럼 입안이 얼얼하고 따가워 신경이 곤두섰다. 치료를 위해 동네 이비인후과와 치과를 찾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조언대로 하루에 물을 2L씩 마셨지만 증상은 그대로였다. 좋아하던 생선 조림처럼 맵고 뜨거운 음식은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박씨는 “치료를 못 하는 건 아닐까, 전염되진 않나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며 “우울감이 심해지고 입맛이 떨어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씨처럼 겉으로는 멀쩡한데 혀나 입안이 불타는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픈 사람이 적지 않다. 혓바늘이 돋거나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증상은 사라지지 않아 애를 태운다. 이때 의심해야 하는 병이 ‘구강 작열감 증후군(burning mouth syndrome)’이다. 서울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고홍섭 교수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55세 이상 남녀 10명 중 1~2명(14.3%)이 경험할 만큼 흔한 병”이라고 말했다.



주로 혀·입천장 앞쪽에 이상 감각 느껴



구강 작열감 증후군은 눈으로 보거나 X선 같은 방사선 검사에서 이상이 없는데 입안에 통증 등 이상 감각이 하루 2시간 이상, 3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진단한다. 폐경기 전후 여성에게 흔하고 주로 혀와 입천장의 앞쪽에 이상 감각을 느낀다. 오전보다 오후에 증상이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경희대치과병원 구강내과 이연희 교수는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건 이 병이 신경 자체의 문제로 발생하는 신경병성 통증이기 때문”이라며 “구강암과 달리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운동 기능이 줄지 않으면서 감각 이상만 나타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구강 작열감 증후군은 구강 문제를 비롯해 만성질환·생활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가 구강건조증이다. 나이 들면 노화로 침샘의 기능이 떨어지고 고혈압약 등 먹는 약이 늘면서 침 분비량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입이 마르면 불필요한 마찰·자극이 반복돼 구강 점막이 위축되고 신경이 다치기 쉽다. 실제 구강건조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구강 작열감 증후군이 발생할 위험이 10배가량 높다는 연구결과(국제구강안면외과학회지, 2014)도 있다.

감염·알레르기 등 구강 질환도 악영향을 미친다. 진균(곰팡이) 감염으로 인한 칸디다증과 면역반응 이상으로 생기는 편평태선이 대표적이다. 강동성심병원 이비인후과 박민우 교수는 “피부가 다치면 딱지가 남듯 감염 등으로 인한 염증 반응은 신경 손상이란 후유증을 남긴다”며 “구강 질환이 반복되면 치료가 잘돼도 신경 문제가 누적돼 이유 모를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양부족 역시 입병의 원인이 된다. 비타민B군과 아연·철분·엽산 등 무기질이 부족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세균이 침투하기 쉽고, 손상된 점막·신경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해 구강 작열감 증후군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당뇨병·빈혈 등 만성질환도 악영향을 미친다. 당뇨병으로 말초신경이 망가지거나 위염·빈혈 등으로 체내 무기질 흡수량이 줄면 도미노처럼 구강 건강도 무너진다. 이 교수는 “맞지 않은 틀니를 끼거나 혀로 치아를 미는 습관 등이 구강 신경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증상 악화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일반 소염진통제론 통증 조절 어려워



중앙일보

구강 작열감 증후군


구강 작열감 증후군의 고통은 몸은 물론 마음에도 번진다. 음식 섭취가 어려워 영양결핍을 겪고 우울감·수면장애 등으로 이어져 삶의 질이 뚝 떨어진다. 이 교수는 “통증이 지속하면 뇌가 위축되고 통증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교란되는 등 중추신경계도 변화한다”며 “같은 자극을 더 강하게 느끼게 돼 우울증 등 심리적인 문제가 악화하고 이로 인해 통증 조절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조기 진단·치료를 강조하는 이유다. 박 교수는 “일찍 관리할수록 증상 완화 효과도 크다”며 “구강건조증이나 감염 등 개별 요인을 하나씩 다스리고, 그래도 증상이 낫지 않으면 약물을 처방하는 등 단계별로 치료한다”고 설명했다. 침이 부족한 경우 침샘을 자극하는 가글용 약물이나 입안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도포 물질을 바르고 감염이 의심되면 항진균제를 써서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식이다. 만성질환을 관리하면서 염증을 유발하는 흡연·음주를 멀리하고 식습관과 구강 위생 개선 등 생활습관 교정도 병행해야 한다.

구강 작열감 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은 일반 소염진통제로는 조절하기 어렵다. 민감해진 신경을 잠재우려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전문의약품(향정신성의약품)을 써야 한다. 주로 ‘클로나제팜’ 성분의 알약을 하루 1~3회, 5분 정도 입안에서 녹인 뒤 뱉는 방법을 적용한다. 이 교수는 “통증과 관련한 신경계에만 작용해 위장장애 등 전신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6개월 이상 치료하면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문제없을 만큼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