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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연민도 동정도 아닌 탈북자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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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41)무산일기

감독 박정범(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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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가 나온 2010년에 탈북자 소재의 영화는 한국독립영화계의 한 흐름이었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을 연민과 동정으로 바라보는 대다수 탈북자 소재 독립영화들과 달리 <무산일기>엔 당당한 것이 있었다. 박정범이 직접 연기하는 주인공 전승철은 주변으로부터 늘 당하기만 하는 희생자처럼 보이지만 초반부터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탈북자 신분에 전문기술이 없는 처지라 취직이 쉽지 않은 이 남자에게 일상적으로 닥치는 일들은 차별이 만연한 남한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지만 그는 굴욕당하고 얻어터지고 설교를 듣고 도대체 나아질 기미가 없는 자신의 삶을 고요히 견디면서도 흠모하는 여자를 따라 교회에도 나가고 그에게 번번이 구박받으면서도 구애를 멈추지 않는다.

전승철은 함께 사는 동거인 친구를 비롯해 건들거리며 남한사회에 적응하려 애쓰는 다른 탈북자들과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엄혹한 경쟁체제 사회에 들어온 그들은 모두 날카롭게 신경더듬이를 켜고 자신이 혹시 당할 불이익을 경계하느라 두터운 인격의 갑옷을 쓰고 산다. 그들 사이에서 전승철은 자기 욕망을 누르고 사는 척 위장하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그가 내면에 감추고 있던 공격성이 격렬하게 분출될 때 화면의 호흡도 가빠진다. 마냥 순하기만 한 것처럼 보였던 그는 아주 힘겹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공세적으로 드러낸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박정범 감독은 전승철이 멜로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맞는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그가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괴물이 되는 것은 필연이라는 걸 암시한다.

<무산일기>는 탈북자 주인공을 우리가 도와줘야 할 측은지심의 상대로 대상화하지 않고 쉽게 예단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인간성을 들여다본다. 전승철이 그래도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관객이 지켜보는 동안 <무산일기>의 마지막 장면은 다른 사람에겐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당사자에겐 커다란 비극이 되는 사건을 전승철 앞에 던져놓고 끝까지 그를 지켜본다. 극적인 과장을 배제하면서도 극적인 주름을 잡아낸 이 카메라의 윤리는 정직하면서도 단호하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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