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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신임 CEO의 공격전술+30년 현지화 전략이 빛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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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조선일보

시세이도는 전 일본 코카콜라 회장 출신 우오타니 마사히코 대표를 2015년 CEO로 영입했다.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 ‘비전 2020(VISION 2020)’을 중국 시장 공략을 통해 조기 달성했다.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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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와 +244%.

9월 25일 종가 기준 아모레퍼시픽과 시세이도의 지난 4년간 주가 변화 추세다. 한국과 일본의 1위 화장품 기업의 운명이 엇갈린 것이다. 2015년 사드 사태를 고려하면 가장 큰 변수는 중국 시장이었다.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점차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중저가 브랜드 전략을 펼치던 아모레퍼시픽은 매출이 하락세에 접어든 반면, 고가 브랜드 시세이도는 성장세가 매섭다. 시세이도의 지난해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32.3% 성장했다. 올해도 시세이도는 중국 사업 매출을 지난해보다 20%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오린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올해 마케팅 비용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360억엔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주로 중국에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언뜻 보면 시세이도에 우연히 겹친 호재가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기 비결 뒤에는 30년의 세월이 있다. 오랜 기간 다져놓은 현지화 전략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성공전략 1│베이징시와 합작 브랜드 출시

조선일보

시세이도의 중국 시장 진출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세이도는 베이징시 정부의 승인을 거쳐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수입품을 판매했다. 1983년에는 베이징시와 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헤어 제품인 ‘화쯔(華姿)’를 출시했다. 일본의 고유 이미지를 내세우기보다 중국 현지 브랜드로 눈속임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베이징시의 신뢰를 받으면서 동업도 제안받았다. 국영 기업 ‘베이징 리위안 주식회사’와 합작 벤처기업을 만들자는 안이었다. 그 결과, 1991년 ‘시세이도 리위안 코스메틱스’가 설립됐다. ‘시세이도 (중국) 투자 주식회사’가 25%, 베이징 리위안 주식회사가 35%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이었다.

시세이도 리위안 코스메틱스는 3년간 중국인의 피부 특성을 연구한 결과, ‘오프레(AUPRES)’라는 중국 전용 브랜드를 출시했다. 오프레는 출시 초반 80~100위안에 판매됐다. 당시 중국인의 평균 월급은 500위안에 불과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위안을 호가하던 영미권 화장품 가격의 절반 이하였다. 명품 수입 화장품을 사고 싶은 중국인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선사한 유일한 브랜드였던 것이다.

20년이 지난 현재 오프레는 중국의 ‘국민 화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들의 공식 화장품으로 선정됐을 정도다. 오프레는 2016년 기준 중국 백화점 1123곳과 부티크 스토어 8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성공전략 2│고급 화장품으로 입지 다져

중국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상승하면서 시세이도의 주요 제품군인 고가 브랜드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현지 브랜드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쌓은 토대가 도움이 됐다. 낯선 브랜드가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면 소비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이미 보증된 회사의 브랜드라면 비싼 가격을 충분히 지급할 수 있다.

지난해 시세이도 고가 브랜드의 매출 성장세는 2017년보다 51.2% 증가했다. 시세이도는 고가·중가 뷰티 브랜드를 비롯해 퍼스널 케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중 고가 브랜드의 판매 비중이 가장 높다. 지난해 고가 브랜드의 매출은 836억엔으로 전체 매출(1909억엔)의 43%를 차지했다.

그간 전략적 인수·합병(M&A)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세이도는 2000년 프랑스 고급 색조 브랜드 나스(NARS), 2016년 미국 고급 화장품 로라 메르시에(Laura Mercier)를 인수했다. 기초 제품이 주를 이루는 시세이도 라인과 달리 두 브랜드는 색조 제품이 유명하다. 중국 화장품 시장이 급격히 성장해 기초 제품 이외에 색조 제품 시장이 확대된 것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채널별로 유통시장을 달리하면서 중저가 라인도 확보하고 있다. 중가 화장품 브랜드인 ‘엘릭서’ ‘아넷사’와 퍼스널 케어 부문에서 헤어 관리 제품 ‘츠바키’와 클렌징 폼으로 유명한 ‘센카’가 드럭 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다.

성공전략 3│온라인 유통 채널 확대

시세이도는 올해 1월 1일부로 중국 지역본사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본사보다 중국 지역본사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지역본사 대표에게 현지 전자상거래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과제를 부여했다.

그 결과, 지난 4월 시세이도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알리바바 본사와 걸어서 5분 거리에 항저우 지사를 설립했을 정도다. 시세이도는 2008년 알리바바 그룹이 시작한 중국 판매량 1위 쇼핑몰 티몰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티몰의 중국 뷰티 제품 구매량은 매년 60% 이상 증가하고 있다.

티몰에 쌓인 빅데이터도 유용한 자원으로 쓰일 예정이다. 두 업체는 헤어 에센스 오일, 샴푸 등 한정판 헤어 제품을 공동 개발해 9월 중에 선보인다. 알리바바 그룹의 시장조사 전문 자회사 ‘티몰 이노베이션 센터’가 중국 소비자 행동, 취향 분석 데이터 등을 시세이도에 제공할 계획이다.

plus point
시세이도 구원투수 우오타니 마사히코 CEO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 논란으로 하락세를 걷던 시세이도는 2016년부터 부활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사드 사태로 한국 화장품이 하락세를 걷던 2015년 직후 시점이다. 매출 감소로 공장 가동을 줄여야 했던 시세이도는 최근 생산 물량이 부족해 주문을 못 댈 만큼 호황기를 맞고 있다.

시세이도 부활 뒤에는 2014년 영입된 우오타니 마사히코(魚谷雅彦) CEO의 리더십이 있었다. 우오타니 마사히코 CEO는 2001년 일본 코카콜라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26년 만에 처음 나온 일본인 사장이었다. 이후 2006년 회장까지 역임했는데, 당시 캔커피 ‘조지아’와 혼합차 ‘소켄비차’를 내놓아 크게 히트시켰다.

음료 회사에서 화장품 회사로 옮긴 우오타니 CEO는 취임 직후 시세이도를 ‘전투를 위한 집단’으로 명명했다. 그는 "사내 관료주의를 없애겠다"면서 "전투를 위한 집단이 되기 위해 개개인의 마인드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세계 1등 브랜드를 지향하는 중장기 성장전략 ‘비전 2020(VISION 2020)’을 추진했다. 2020년까지 매출 1조엔, 영업이익 1000억엔, 자기자본이익률(ROE) 12%를 달성한다는 게 목표였다.

시세이도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2017년에 매출 1조엔을 조기 달성했다. 이에 ‘뉴 비전 2020(NEW VISION 2020)’을 발표했는데,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고가 브랜드를 육성하고 이커머스 시장을 공략해 2020년까지 매출 1조2900억엔, 영업이익 1500억엔, 영업이익률 11.6%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대외 상황도 우오타니 CEO를 도와주고 있다. 해외 시장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 시장까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폭증하면서 이들이 일본에서 원정 구매하는 시세이도 제품 매출도 지난 3년간 20~70%의 연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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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이코노미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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