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단독]도로공사, ‘자회사 전환’ 노사 합의 없이 강행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노·사·전문가협의회 ‘합의 실패, 국토부 이관’ 문건 확인

‘갈등 경고’에도…도공 측 일방 서명, 정부는 사실상 묵인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요금수납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논의했던 ‘노·사·전문가 협의회’에서 전문가 위원들이 노사 간 이견을 들어 “합의 실패”를 선언했음에도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전환을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개별 사안”이라는 이유로 사측의 전환 방식을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비정규직 전환 관련 제11차 중앙컨설팅단회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시행 후 노동부는 정규직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중앙컨설팅단’을 만들고 도로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에 전문가를 파견했다. ‘노·사·전문가 협의회’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꾸려졌다.

지난해 9월11일 작성된 문건은 전문가 위원으로 회의를 주관했던 조성재 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당시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이 노동부 등에 보고하기 위해 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조 비서관은 보고서에서 “협의회가 1년여의 활동을 벌여왔지만 노사 간, 회사와 전문가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2018년) 9월5일 제9차 본회의에서 사안을 잠정 종결한다”며 “노동부와 국토교통부의 새로운 판단과 방향 제시를 구한다”고 밝혔다. 협의회에서 정규직 전환 방식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으니 정부가 방안을 제시해달라는 의미다.

조 비서관은 문건에서 합의 실패 책임이 사측에 있다고도 했다. 그는 “전문가 위원들은 직접고용, 자회사, 분리선택 등 3가지 복수안을 제안했으나 공사 측은 이 틀을 거부하고 자회사 방식 일변도의 수정안을 제시했다”며 “조정과 협의를 지속했으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의 회의는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합의 실패가 선언됐지만 사측은 합의안 서명을 강행했다. 결국 사측과 노조가 없는 다수의 용역업체 노동자 대표 등의 주도로 회사안에 대한 서명 날인이 이뤄졌다. 전문가 위원들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 대표가 “서명이 이뤄지더라도 협의회 이름으로 기록이 남을 수 없다”고 항의한 뒤 퇴장했지만 서명을 막지 못했다.

조 비서관은 사측이 자회사 방식만 고집하느라 정부 방침마저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사 측은 자회사 방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자회사를 노동자가 수용할 경우 30% 임금인상안을 제시했다”며 “정규직화 과정에서 국민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며 다른 자회사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자회사 전환을 받아들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용역업체 시절에 비해 평균 30% 인상됐다. 조 비서관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법원 판결로 직접고용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사측 요구에 응하면 고용조건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 전환거부자’로 분류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 위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측의 전환 방식을 사실상 승인했다. 노동부 공공부문정규직화추진단 관계자는 “협의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며 “정부 가이드라인도 노·사·전문가가 논의해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근로자 대표 6명 중 5명이 합의해 (자회사 전환이) 추진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며 “다만 이견이 있는 노조가 있으니 노사 양측에 ‘계속 협의해 원만하게 풀도록 하라’는 의견은 전달했다”고 했다.

주훈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기획실장은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자회사 전환에 대한 노·사·전문가 합의’가 거짓이라는 명백한 증거”라며 “노동부와 국토부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자회사 전환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