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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김세형 칼럼] 광장의 勢대결, 음모론도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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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촛불혁명 이후 3년 만에 주최 측 주장 300만명의 거대한 군중이 사흘 간격으로 모였다.

한 번은 광화문에서, 두 번은 서초동 검찰청 주변에서. 우파와 좌파가 세(勢)를 키워가며 정면으로 서로를 겨눴다.

이 세 대결의 함성은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더 이어가리라 짐작한다. 한국의 꼬락서니가 몰락으로 갔던 그리스, 아르헨티나의 냄새가 풀풀 난다.

싸움을 말려야할 대통령은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견이 나뉘는 것은 국론분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시위를 자제해달라는 호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위대가 몰린 광장과 시가지들을 일부러 2시간씩 시간을 들여 군중 사이로 돌아다니며 그들이 무엇을 외치는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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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광화문광장 주변이 자유한국당 관계자와 범보수단체 등이 각각 개최한 집회로 시민들이 가득 차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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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일(광화문)과 5일(서초동) 저녁 KBS와 MBC가 어떻게 방송하는지 살펴봤다.

MBC 8시 뉴스는 그날 최대 뉴스였던 광화문 시위를 아예 보도조차 안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가 개천절 기념식에 가지 않고 시위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난했다. 시위 군중의 전체 모습은 비추지 않아 뉴스매체이길 포기했다.

KBS 9시 뉴스는 태풍피해 보도로 시간을 질질 끈 다음 무려 33분이 지난 다음에야 광화문 시위를 간결하게 보도했는데 전체 시위 그림을 보여주긴 했다.

그리고 5일(토) 문재인정부와 조국을 지지하는 서초동 검찰청 시위 장면.

MBC는 기다렸다는 듯 톱뉴스로 대형 크레인을 세운 탑 위에서 보도한다며 300만명이 모였다고 흥분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은지 8시 30분 스포츠뉴스로 넘어가기 전 이 시각 현재 장면이라며 또 한 번 보도했다.

KBS 9시 뉴스는 9시 6분부터 하늘 높이 시위 군중의 모습을 포착한 장면들을 내보내며 상세 보도했다. 광화문 우파 시위에 비해 27분이나 빨리 하며 분량은 늘렸다.

왜 한국의 대중은 지금 화가 나있는가.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KBS, MBC의 뉴스 태도가 증명하고 있다.

'폭정'을 쓴 티머시 슈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독재정권은 공중파 TV부터 장악한다고 했다.

한국당은 현재 정권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처럼 사법부 헌재 시민단체 노조 등을 줄줄이 장악해 독재로 간다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에서 존경받는 법학자인 허영 석좌교수는 광화문 시위에 모인 군중은 폭정과 독재가 물러가라고 외친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 그런 슬로건과 팻말은 물론 많았다.

국민은 현 정부를 아직 독재정권이라 부르지 않으며 내 생각도 그러하긴 하다.

광화문, 서초동 두 시위현장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됐다. 그것은 분노와 증오다.

히틀러의 선전장 괴벨스는 대중이 분노와 증오에 휩싸이면 분별력을 잃고 사실(fact)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광적으로 돌변한다고 했다. 독재자는 대중의 충격과 슬픔을, 독재자는 제도를 바꾸는데 악용하는 것을 명심하라고 슈나이더는 경고했던 것이다.

광화문 시위대는 조국 파면, 문재인 퇴진까지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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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서초역 사거리 일대에서 열린 제8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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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으로 가면 검찰 개혁-조국 수호를 기본 슬로건으로 하여 자한당 해체, 언론개혁을 주장한다. 슈나이더가 경계한 제도 바꾸기다.

대형 화면에 비추는 장면은 문 대통령이 웃으면서 "검찰개혁 적임자가 누구냐"는 장면이 나오고, 옆에 조국이 웃으며 맞장구치는 장면에 군중이 환호하는 게 후계자로 수호하는 느낌이 확 번졌다. 그러면서 무대에서 사회자는 조국의 가족을 수사하는 검찰을 악으로 몰고, 생뚱맞게 '언론개혁'을 외쳐댔다.

이번 시위 후에 진보 컬러의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검찰의 조국 수사는 적절하다 49% vs 과도하다 46%로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8일 서초동 시위에 힘 받아 9월 30일 조국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윤석열에게 검찰개혁을 서두르라고 지시하자 윤석열은 곧바로 특수부 3곳만 남기고 폐지, 관련기관 검찰파견 금지, 공개소환(포토라인) 폐지로 즉각 응답했다. 이젠 국회에서 하면 되는 것밖에 안 남았다.

그렇다면 5일 시위는 굳이 안 해도 되고 그러면 광화문 시위도 명분을 잃어 양쪽 다 길거리 데모는 중단하면 딱 좋았다.

그러면 국제사회는 한국을 아르헨티나 태국보다 몇 수 위 선진국으로 봐줄 것이었다.

무엇이 좌·우파 군중들로 하여금 연쇄 시위를 하게끔 촉발했던가.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때 자리를 비운 사이 검찰이 조국의 집을 11시간 동안이나 압수수색한 것을 질책한 것이 촉발했다. 이 질책은 좌파 시위대가 서초동 검찰청을 위협하는 데모를 했고 그곳에 더민주 의원이 대거 무대를 점령해 선동했다.

문재인정부와 조국을 엄호한 것인데 사실상 대통령의 암묵적인 동원령으로 파악한 언론 분석도 있었다.

그 이후 우파 세력이 개천절에 광화문 일대를 점령했고 그곳에 나경원 대표가 무대에 올라 서초동이 200만이면 우리는 2000만이겠다고 우긴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국회의원을 뽑아 대의정치로 국론을 정하는 시스템이다. 즉 다수결이다.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나 그보다 나은 게 없으니 민주주의를 한다는 명언을 했다.

직접민주정치는 선동과 포퓰리즘이 판을 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고 그것이 국가를 망쳐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고대 그리스의 파멸을 알기 때문에 안 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조항에서 국가를 수호한다는 책무를 넣은 게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라는 명령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다수결을 외면한달지 길거리 시위를 부추기면 안 된다.

여론조사와 대통령 지지율보다 더 잘 말해주는 지표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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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4일 오전 출근을 위해 서초동 자택에서 나와 차에 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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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하기 전 반대한다는 여론은 항상 51%를 넘었으며 임명 후에도 "잘못된 인사"라는 여론 응답은 대부분 56%를 넘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조국을 내보내야 한다. 여론에 따르는 게 민주주의 대원칙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운용에 대한 지지율은 40%가 달랑달랑하고 아차하면 30%대로 굴러떨어지려 한다.

이렇게 훤히 숫자가 나와 있는데 광화문과 서초동의 시위 군중 세(勢) 대결은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미개할 정도로 허망하다.

과학적인 페르미(Fermie)기법으로 분석하면 광화문이건 서초동이건 각각 30만명을 넘기 어렵다. 4200만 유권자의 0.7%에 불과한 숫자다. 아무리 불려봤자 1%도 못 넘길 것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지 못한다. 여론조사와 대통령 지지율이 대표적 생각이다.

민주주의에선 국민이 주인이며 주인의 뜻에 반해 권력을 훔치는 건 강도 행위다.

훤하게 숫자가 나와 있으므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론 분열과 물리적인 충돌로 사과가 확대되지 않게 "나를 믿고 서초동 시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그러면 황교안 대표도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론 지지가 폭락하지 않겠는가.

서초동이 크게 하면 광화문이 더 크게 하고 그러다간 나라가 망한다.

경제는 고꾸라질 것이고 어느 순간 해외 자본마저 갑자기 떠나면 금융위기가 찾아올 것이고 외교를 잘못해 미국 일본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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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0일에 열린 문재인 제 19대 대통령 취임식 선서 장면./사진=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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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한 날부터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취임사에서 읽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저의 국민이므로 섬기겠습니다"라고 분명히 약속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표자의 41%의 지지로 당선됐는데도 취임 초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로 높은 81%의 지지율을 얻은 것은 국민이 취임사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라가 두 동강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방치하면 취임사가 거짓말이 된다. 더 큰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즉 우선 높은 지지율을 얻은 다음 그것을 배경으로 민노총 등 좌파 세력을 밀어주기 위해 최저임금, 52시간 근로제, 탈원전 등 국력에 해로운 일들을 눈 딱 감고 해치우기 위한 속임수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오해를 풀어야 한다.

실적을 잘 내서 회사와 종업원이 좋으면 대표(CEO)가 연임하고 실적이 추락하면 쫓겨나는 기업경영과 똑같은 게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이치다. 1990년대 영국의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바지 입은 대처'라는 닉네임까지 얻어가며 정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 눈물겨운 노력을 보라.

서초동 시위로 세를 결집해 차기 선거에 도움을 줌으로써 정권을 연장한다는 얄팍한 술수는 똑똑한 국민들에게 안 통한다.

2020년이 되면 세상은 전혀 다르게 바뀔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 미·중 간 충돌 격화, 마이너스 금리 시대 도래 가능성, AI(인공지능) 확산 작용에 따른 청년 대량실업 등등.

세계 10위권 한국 같은 위치에 있는 나라 가운데 지금 좌·우파가 길거리에서 정권 빼앗기 데모로 대결하는 정신 빠진 나라가 어디 있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가 중요하다고 신신당부했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하고 AI대책회의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4~5차례 행사 내용을 보니 개성공단 기업인, 해외한인대회 등의 관계자를 만나 전부 북한 이야기만 해댔다.

서훈 국정원장은 11월에 김정은이 한·아세안정상회담 때 부산을 방문하지 않을까 전망한다는 말을 했다.

서훈은 이 예측이 틀리면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라.

나는 검찰총장 출신에게 "왜 조국 지키기엔 답이 없어 보이고 이젠 대통령에 출마해도 안 될 것 같은데 저리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평범한 사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답이 돌아왔다.

"…조국 문제가 없다면 지금 무슨 문제가 이슈(Issue)를 장악할 것 같은가. 그것은 경제와 외교 실정일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추궁당하면 실정이 부각돼 총선에 견디기 어려운 큰 악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더 큰 악재를 덮으려고 조국 문제를 키운다는 것인데 무슨 음모론을 말하는 것 같다. 솔깃한 분석같지만 그런 음모론을 믿고 싶지 않다.

오히려 여론 지지율 40%가 깨질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며 절벽에서 실오라기를 부여잡고 있는 것 아닐까.

[김세형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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