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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착한뉴스]가슴까지 차오른 물에서 할머니 업고 나온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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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27) 포항북부경찰서 장성파출소 순경

태풍 미탁으로 집에 갇힌 90대 할머니 구해

중앙일보

지난 2일 자정쯤 경북 포항에서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집에 고립된 90대 할머니를 한 손승현 장성파출소 순경이 업고 나왔다. 당시 물은 성인 가슴 높이까지 불어나 있었다. [사진 경북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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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자정쯤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종합시장.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시장엔 성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찼다. 교통경찰이 나와 인근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장 안쪽에서 주민 두 명이 헐레벌떡 뛰어와 경찰을 찾았다. 이들은 “시장 안쪽 집에 물이 많이 찼는데 할머니 한 분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인근 교통 상황을 통제 중이던 손승현(27) 포항 북부경찰서 장성파출소 소속 순경이 이들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손 순경은 “물이 무릎 정도까지 차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가슴 밑까지 와서 걷기조차 힘들었다”며 “이 상황에 못 빠져나온 분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빨리 구조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손 순경이 주민 2명을 따라 가보니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정모(93)씨와 그의 70대 아들이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들은 “할머니를 업고 물길을 헤치며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아 대피를 못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손 순경은 즉시 할머니를 업었다. 주민 2명은 아들과 함께 순경을 뒤따라 집을 나섰다. 그사이 물은 더 불어 있었다. 집 대문을 나와 5m 정도 갔을까, 손 순경은 오른발이 아래로 푹 떨어지는 걸 느낀 뒤 꼬꾸라졌다. 많은 비에 맨홀 뚜껑이 열려 생긴 틈에 손 순경의 오른 다리가 빠져 정강이까지 낀 것이다. 손 순경은 “순간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얼굴까지 물이 차올랐다”며 “업힌 할머니도 함께 물속에 빠져 몸이 다 젖었다”고 말했다.

손 순경이 땅을 짚고 일어서기 위해 할머니를 놓으면 물살에 할머니가 휩쓸려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뒤따라오던 주민 2명과 아들은 스스로 거동조차 힘들어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없어 보였다. 손 순경은 할머니를 업은 채 물에 빠지지 않은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오른 정강이를 발판 삼아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손 순경은 할머니를 업고 40m가량 물바다를 걸어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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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 경북 포항북부경찰서 장성파출소 소속 순경. [사진 경북경찰청]


손 순경이 할머니를 업고 나오자 주민들은 박수를 쳤다. 주민들은 “대단하다. 장하다”며 그를 칭찬했다. 손 순경은 맨홀 뚜껑에 찍힌 오른쪽 다리의 치료를 위해 응급실로 향했다. 파상풍 주사를 맞고 6바늘을 꿰맨 뒤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손 순경은 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할머니께 ‘다 왔다. 이제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제 어깨를 꽉 잡은 손을 놓지 못하시더라.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며 할머니를 걱정했다. 이어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이 칭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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