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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42]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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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지능이 높은 동물은 한결같이 사회를 구성하고 산다. 우리 인간을 비롯해 영장류, 코끼리, 돌고래, 까치, 까마귀, 앵무새 등은 모두 남들과 한데 모여 살며 관계의 역학을 이해하느라 두뇌가 발달했다는 것이 지능의 진화에 관한 일반적 설명이다. 그런데 문어가 문제다. 문어는 각자 따로 살기 때문에 남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데 거의 우리가 기르는 개 수준의 지능을 지녔다.

문어를 병 속에 넣고 마개로 막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빨판을 이용해 안에서 마개를 돌려 열고 빠져나온다. 문어가 좋아하는 먹이인 게를 병에 넣고 마개를 덮어둬도 밖에서 마개를 열어 꺼내 먹는다. 수조 안에 모셔둔 문어가 마실 다녀온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다른 수조에 들어가 먹이를 잡아먹거나 아예 바다까지 다녀온 문어도 있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이라 그저 작은 책 크기의 틈만 있으면 거뜬히 드나든다.

문어는 자기 굴 주변을 조개나 코코넛 껍데기로 덮어 위장할 줄도 안다. 사물 모양이나 패턴을 구별할 줄 알고 웬만한 학습 능력도 갖추고 있다. 과학자들은 문어가 그저 영리할 뿐 아니라 기본적 감정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문어를 수술할 때 반드시 마취해야 한다. 무려 3만3000 유전자와 신경세포 3억개를 지닌 섬세한 동물이다. 과연 이런 동물을 먹어도 되는 걸까? 그것도 산 채로?

문어는 4억년 전 공룡과 포유류보다 훨씬 먼저 나타나 지금까지 세계 거의 모든 바다에 살고 있다. 그러나 몸의 색은 물론 형체도 거의 자유자재로 바꾸며 숨어 있어 개체 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음식이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며 포획이 심각한 수준이다. 오늘은 ‘세계 문어의 날’이다. 문어에 관한 책도 읽고 다큐도 찾아보기 바란다. 알면 알수록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게 우리 심성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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