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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인도, 화장실 1억개 만들었지만 '길거리 배변' 못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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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60만개 마을에 보급했지만 하층계급 공중화장실 못쓰게 차별

집안에 화장실 안 두는 문화 영향… 물 부족과 부실한 관리도 약점

조선일보

모디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2일 마하트마 간디 탄생 150주년 기념식에서 "인도가 '노상 배변이 없는 나라'가 됐다"고 선언했다. 이어 그는 "지난 60개월 동안 화장실 1억1000만개를 지어 6억명에게 보급한 우리의 성공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자랑스레 소개했다.

총리가 국경절 행사에서 화장실 설치를 큰 치적(治績)으로 선언할 정도로 인도에서 화장실 문제는 국가적 현안이었다. 이는 가난과 낙후한 위생 개념 때문만이 아니었다. 인도 특유의 계급제도인 '카스트'와 종교·문화적인 요인이 얽힌 복잡한 문제였다.

인도는 예로부터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소의 똥은 귀하게 여겼지만, 사람의 대변은 불결하게 여겼다. 특히 마디아프라데시주 같은 시골 지역은 도시보다 정도가 강해 집 안에서 대변을 보는 것조차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집 안에 화장실을 두지 않고 노상 배변이 일반화돼 있었다.

이런 배변과 화장실 문화는 심각한 위생 문제를 낳았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인도에서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6억2000만명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고 이들이 매일 노상에 내놓는 오물만 6500만㎏에 달했다. 이에 따른 수질오염과 위생 문제로 인해 설사병과 전염병 등을 낳았다. 특히 여성들은 들판이나 골목, 강가 등에서 배변하다가 강도나 성폭행, 납치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모디 총리는 2014년 취임 직후부터 '똥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는 "앞으로 5년 동안 인도 전역에 화장실 1억1000만개를 짓겠다"고 선언하고 '스와츠 바라트(Swachh Bharat·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9년 10월까지 모든 집마다 최소한 한 개의 화장실을 갖추도록 해 인도 전역의 청결과 위생시설 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1억1000만개의 화장실을 5년 안에 짓는 인류사에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역사(大役事)를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자 화장실 보급은 속도를 냈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캠페인 기간 중 59만9963개 마을에 총 1억74만8884개의 화장실이 새로 지어졌다. 인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14년 2월 38.7%에 그쳤던 화장실 보급률은 이제 100%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 덕에 인도인 30만명이 설사와 영양실조에서 벗어나 목숨을 건졌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의 문화와 관습이 화장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달 25일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바브케디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브케디 노상에서 온몸이 각목에 맞은 상처로 뒤덮인 10대 초반 청소년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그들은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카스트에 속한 아이였다. 그들은 그날 아침 용변을 보러 길거리로 나갔다가 집단 구타를 당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계급 차별 때문에 상당수 인도인은 불가촉천민에게는 공동화장실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길거리에서 용변을 보다 변을 당한 이유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클린 인디아 캠페인에도 인도는 여전히 화장실 사용 정책이 필요하다" "모디가 노상 배변 없는 나라를 선언했지만 의문은 남아 있다"며 캠페인의 효과를 의심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CNN은 "모디가 변소 1억1000만개를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그걸 사용할까?"란 기사에서 화장실 보급률 수치가 부풀려졌고, 물 부족과 관리 부실 때문에 노상 배변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나다르 칼리드 인도 공감경제연구소 연구원은 CNN에 "인도 정부는 화장실을 짓는 것만 신경 쓸 뿐 사람들이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하고, 시설을 유지하고 하수를 관리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가 지난해 말 인도 북부 4개 주를 조사한 결과 야외에서 배변하는 비율은 여전히 4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뉴델리에서도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매일 1㎞ 떨어진 옆 마을로 가는 이가 많다. 줄이 길어 차례가 되려면 30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전했다. 힌두스탄타임스는 "10월 2일 이후에도 인도는 '노상 배변 없는 나라'가 아니다"라며 "화장실이 보급됐다고 캠페인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 사용 확대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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