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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차이콥스키의 선율에서, 우리는 비극을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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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슈트로세·샤를리에 '트리오 오원'

10주년 앨범 '러시안 엘레지' 발매

쇼스타코비치·바인베르크가 쓴 유대인 학살 등 애달픈 곡 담아

"세 다리로 서 있는 삼각대처럼 서로의 빈자리 메워주며 성장"

'클래식을 왜 하니?' 많이들 묻는다. 먹고사는 데 무슨 보탬이 된다고. 그때마다 첼리스트 양성원(52·연세대 교수)은 말없이 시곗바늘을 되돌린다. "베토벤이든 슈베르트든 한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는 단순히 그 곡을 재생하는 데 그치지 않아요. 한 시대의 삶을 기록하는 거죠."

이를테면 1919년 폴란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올해 탄생 100주년인 작곡가 바인베르크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젊은 나이에 나라를 떠나야 했다. 부모와 여동생은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다. 홀로 남은 그는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로 도피해 방황하다가 거기서 만난 쇼스타코비치의 초대로 소련으로 망명해 러시아 사람이 됐다. 양성원이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린 시절 바르샤바에 있을 동안 피와 살에 속속들이 새겨진 삶과 독일군의 박해,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짙게 배어 있죠. 어둡고 무겁고 지독히 절망스러운 감정들. 표피적인 인간의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음표로 썼고, 그래서 저는 악보야말로 작곡가 당대의 혼(魂)이 담긴 아카이브라고 생각해요."

조선일보

트리오 오원은 “음악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국경 없는 언어”라고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올리비에 샤를리에, 에마뉘엘 슈트로세, 양성원. /P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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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해석과 연주로 매해 새로운 작품에 도전해온 양성원은 올해 뜻깊은 순간을 맞았다. 파리고등음악원 동료인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58), 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슈트로세(54)와 2009년 결성해 하모니를 일궈온 트리오 오원 10주년이다. '오원(吾園)'이란 이름은 19세기 화가 장승업의 아호로, 양성원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지난 1일 음반 명문 데카에서 10주년 기념 앨범 '러시안 엘레지'를 냈다. 오원의 다섯 번째 정규 음반이다. 아끼는 친구였던 루빈슈타인의 죽음을 슬퍼해 차이콥스키가 1881년 쓴 피아노삼중주, 1943년 역시나 친한 친구의 죽음과 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에 전율해 쇼스타코비치가 쓴 피아노삼중주 2번, 나치와 스탈린에 핍박받았던 바인베르크의 피아노삼중주를 담았다. 수록곡 모두가 비극을 애도하고 절망의 끝을 달린다. 다음 달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해 안동과 창원, 여수, 통영 등 전국을 돌며 10주년 기념 공연 '10년의 울림'도 연다. 7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트리오 오원은 "기가 막힌 음악성을 가졌으면서도 대중에겐 거의 안 알려져 있는, 그렇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단번에 매료된 작곡가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슈트로세와 샤를리에는 양성원이 파리고등음악원에 유학 갔을 때 만난 친구들이다. "35년도 더 된 우정"이다. 틈틈이 합주를 하다가 10년 전부터 트리오로 뭉친 뒤론 "다리 3개가 온전해야 굳건히 설 수 있는 삼각대처럼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면서 성장하는 관계를 경험한다"고 했다. 양성원은 "화려하게 피어난다는 차원이 아니라 뿌리를 좀 더 깊이 내리는 것 같은 만족감"이라며 "기교적으로 큰 소리를 내는 건 차라리 쉽다"고도 했다. "작곡가 중에서도 슈베르트가 내성적이죠. 그만큼 제대로 연주하기가 힘들어요. 사람의 내적인 미를 표현할 때가 가장 짜릿하면서도 보람차요. 오원은 그런 음악을 할 거예요."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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