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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모래바람 덮친 그 땅에 어떻게 숲이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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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사막화로 터전 잃은 몽골 유목민 자립기

유목민들, 기후변화로 기르던 가축 잃어

초원에서 밀려나 '도시 빈민' 전락

조림 사업 10년 '바양노르' 지역

모래폭풍 잦아들고 생태계 복원

주민들 '협동조합' 만들어 경제 자립

스스로 사업하고 소득 만들어 배분

조선일보

지난달 28일 몽골 바양노르에 있는 푸른아시아의 조림사업장. 주민협동조합원들이 주홍빛 차차르간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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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무를 심을 땐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작은 나뭇가지들이 자라서 나무가 된다고? 하지만 보세요. 10년이 지나 이제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어요. 차차르간 열매를 수확해 돈도 벌고 있고요."

지난달 28일 몽골 바양노르. 주민협동조합장 잉흐자르갈(51)씨가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긴 주홍빛 열매를 가리켰다. 갓 수확한 열매를 기자에게 한 움큼 집어주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신맛이 났다. 차차르간 열매는 몽골 사람들의 대표적인 비타민 공급원이다. 주스, 차, 샴페인, 와인 등으로 가공돼 시중에 판매된다. 수확기를 맞은 요즘엔 14명의 조합원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매일 200㎏ 가까이 딴다. 수확한 열매는 1㎏당 5000투그릭(몽골 화폐단위), 우리 돈으로 2300원 정도에 팔린다. 나무가 자라면서 매년 생산량이 늘어 올해는 수확량이 3t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열매를 팔아 벌어들인 수익금은 조합원들에게 공평하게 배분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막화로 매년 60차례 이상 모래폭풍이 몰아치던 바양노르에 '숲'이 생겼다. 높이 5m에 달하는 포플러와 비술나무가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다. 사막화로 가축을 잃은 바양노르의 유목민들은 소와 말, 양과 염소 대신 '비타민나무'라 불리는 차차르간을 기른다. 외부의 도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주민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소득을 만들어내는 '완전 자립'에 성공했다.

'환경난민'된 유목민들

바양노르에서 조림 사업이 시작된 건 지난 2007년이다. 한국 환경 NGO인 '푸른아시아'는 몽골 환경관광부와 지방정부, 주민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10여 년에 걸쳐 바양노르의 환경 개선과 주민 자립을 이뤄냈다. 방풍림(防風林) 역할을 하는 포플러와 비술나무 7만 5000주, 유실수인 차차르간과 블랙커런트 5만5000주 등 총 13만주의 나무가 120㏊ 규모의 조림장에서 자라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푸른아시아 활동가들과 함께 몽골 곳곳을 취재했다. 몽골 사막화 현장과 환경난민 문제를 추적하고, 10년 넘게 현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나무 심기 사업의 성과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을 따라 형성된 '게르촌'이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게르촌 사람들이 난방을 위해 생석탄을 태우는 냄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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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르간 열매


인구 150만명이 거주하는 울란바토르는 애초 50만명이 거주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계획도시였다. 중심지에 사는 50만명은 모든 인프라를 누리고 있지만, 불법 거주 지역인 게르촌 사람들에겐 난방이나 수도 시설이 제공되지 않는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몽골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게르촌 사람들은 비교적 저렴한 생석탄을 사서 난방을 한다. 생석탄이 연소하면서 뿜어내는 연기는 울란바토르의 대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몽골 환경관광부에 따르면, 울란바토르 대기오염 원인의 80%가 게르촌에서 발생하고 있다.

게르촌 거주민의 상당수는 '환경난민'들이다. 사막화로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이 사라지면서 유목 생활을 접고 도시로 흘러든 케이스다. 극심한 가뭄·한파 등 기상이변으로 가축이 떼죽음당하는 '조드(Zud)'라는 자연재해도 유목민을 초원 밖으로 내몰고 있다. 조드가 발생하면 몽골 전역에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몰사하는데, 문제는 조드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권환 푸른아시아 상임전문위원은 "전 재산(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울란바토르로 모이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사막화는 단지 환경문제가 아니라 도시 빈민 문제, 울란바토르 대기오염 문제 등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몽골 사막화방지연구소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최근 70년간 몽골의 평균기온이 2.45도 상승했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이미 몽골 국토의 약 78%에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200㎞ 떨어진 곳에 있는 바양노르는 몽골에서도 사막화의 징후가 가장 뚜렷한 지역이다. 풍부하다는 뜻의 몽골어 '바양'과 호수를 뜻하는 '노르'가 합쳐진 지명이 붙을 정도로 물이 풍부한 곳이었지만, 사막화로 7개 호수 가운데 6개가 사라졌다. 푸른아시아가 바양노르에 대규모 조림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기 초원을 덮고 있는 게 '하르간'과 '데르스'라는 식물이에요. 사막화 지표식물이죠." 차를 타고 바양노르로 향하는 길. 이보람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대리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막화가 진행된 땅에는 풀이 자라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살아남는 식물이 하르간과 데르스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주변의 물을 빨아들여 다른 식물들을 죽인다. 하르간의 경우 뿌리를 파보면 물을 찾아 20m까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바양노르 조림장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푸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는 수시로 모래바람이 불었는데, 조림장이 생긴 뒤 빈도가 훨씬 줄었다"고 말했다. 4~5m 높이로 자란 포플러와 비술나무가 북동, 북서, 남쪽에서 불어오는 모래폭풍을 막아주고 있었다. 나무가 자라면서 풀이 생기고 새들도 날아들었다. 천권환 위원은 "참새가 이 동네에 주저앉아 텃새가 됐다"면서 "단순히 숲이 생긴 게 아니라 생태 복원이 이뤄진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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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몽골 바양척드에서 열린 ‘KB 국민의 맑은하늘 숲’ 조성 기념 행사가 끝난 뒤 주민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푸른아시아와 KB국민은행은 이곳에 10만주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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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잘사는 비즈니스

바양노르 조림 사업은 '주민 자립 모델'로 설계됐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을 사업의 중심에 두고 참여시켰다. '주민직원' 40명을 고용해 월급을 주고 조림과 영농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역량을 강화했다. 천권환 위원은 "큰돈 들여 나무를 심어놓고 관리를 못 해 말려 죽이는 해외 NGO들의 실패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에 예산지원형 조림 사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주민들이 주체가 돼 조림장을 관리하고 사업도 할 수 있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평생 유목 생활을 하던 주민들에게는 나무를 심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다. 관수 시설을 설치할 때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수혜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업국 차장은 “안 그래도 물이 부족한데 귀한 물을 가축이 아니라 식물에게 준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컸다”면서 “시간이 지나 나무가 자라는 걸 보면서 주민들이 오해를 풀었다”고 했다.

초창기에는 토마토나 피망 등을 키우는 ‘영농 사업’과 묘목을 길러 파는 ‘양묘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5년이 지나 유실수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차차르간 열매를 수확해 수익을 냈다. 지역 경제도 조금씩 살아났다. 인구 1800여명, 520여 가구가 사는 바양노르에 단 2개뿐이던 ‘델구르(구멍가게)’가 7개로 늘었다.

주민 공공기금이 어느 정도 쌓이자 내부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민협동조합을 만든 뒤 사업장에서 발생한 소득으로 조합원에게 급여를 주는 자립 구조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조합을 꾸린다는 건 푸른아시아로부터 더는 월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의미였다. 한편으로는 조림 사업의 운영권을 주민들이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민직원 40명 중 14명이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2017년 우여곡절 끝에 바양노르 주민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조합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바트히식(49)씨는 “매년 조합의 수익이 크게 늘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차차르간 열매 1.5t을 수확해 조합원들이 130만투그릭(약 58만원)씩 배당받았는데, 올해 3t을 수확하게 되면 배당금이 두배는 될 것이라고 했다. 수확량이 많아지면서 조합은 올해 처음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일을 얻기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들에게 열매 수확을 맡기고 1㎏당 1500투그릭씩 일당을 지급했다. 조합장 잉흐자르갈씨는 “마을에 일자리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에게 일을 주고 돈도 벌게 해줘서 기쁘다”면서 “우리만 잘사는 게 아니라 다같이 잘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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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양척드 조림사업장 내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비술나무 묘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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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바양노르의 성공 모델은 주변 마을로 확산되고 있다. 푸른아시아는 몽골의 9번째 조림사업지로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1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양척드’를 선정했다. 바양척드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유치한 결과다. 조림 사업 비용은 KB국민은행이 전액 지원한다. 올해부터 5년간 70㏊ 규모의 땅에 방풍수 4만주, 유실수 6만주 등 총 10만주의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김규남 KB국민은행 사회협력부 팀장은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사막화 방지에 일조하고 몽골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바양척드에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바양척드에서 열린 ‘KB 국민의 맑은하늘 숲’ 조성 기념 식목 행사는 ‘마을 축제’ 분위기로 진행됐다. 주민 200여 명이 행사장에 나와 들뜬 표정으로 기념식을 지켜봤다. 축사를 맡은 담딘 환경관광부 장관 자문위원은 “몽골의 기후변화가 다른 나라보다 3배 정도 심각하다”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 NGO에서 협력해 주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양척드 주민들에 따르면, 조림 사업이 시작된 지난 3월 이후 울란바토르에서 생활하던 10여 가구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림장의 주민팀장을 맡고 있는 잉흐저르크트(50)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울란바토르 게르촌에서 살다가 고향에 일자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면서 “나무를 심어 고향의 환경을 살리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서 짐을 싸서 돌아왔다”고 했다. 디와도르즈 바양척드 솜장(한국의 ‘군수’와 같은 직책)은 “이번 조림 사업으로 일자리가 28개 생겼다”면서 “환경이 좋아지고 삶의 질이 나아지면 도시로 떠났던 주민들이 다시 고향을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아시아는 코이카(KOICA)와 함께 울란바토르에 ‘유실수 가공공장’을 설립 중이다. 조림장 인근 지역에서만 소비·유통되던 수확물을 울란바토르 공장으로 모아 가공한 뒤, 몽골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말 공장을 완성해 내후년부터는 시범 가동하기로 했다. 천권환 위원은 “지금은 바양노르에만 주민협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앞으로 나머지 조림장에도 조합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며 “주민협동조합 9개를 묶어 하나의 연합조직으로 만든 뒤, 이들에게 공장을 완전히 이양(移讓)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울란바토르·바양노르·바양척드=글·사진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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