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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매경포럼] 공무원을 일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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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5년 만에 경제부로 돌아왔다.

친분이 있는 경제부처 모 국장은 요즘 공직사회 분위기를 전해줬다. 젊은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국장님, 우리는 왜 이런 쓸데없는 일만 해야 하는 겁니까?"라고 했다. 공무원들이 하고 있는 많은 일이 '쇼'라는 것이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바람에 글로벌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정책이나 장기적 국가 비전을 만들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공직에 대한 과도한 정치개입은 지난 6월 매일경제가 실시한 경제부처 과장급 이상 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경제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76%가 청와대를, 20%는 국회를 꼽았다.

청와대와 국회가 모든 경제 정책을 결정하고 공무원들을 행사에나 동원한다면 모든 의사결정은 정치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베네수엘라 등 남미 포퓰리즘 국가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는 공직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취재해 2003년 초 8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쓴 적이 있다. '공무원을 일류로'라는 제목의 시리즈에서 당시 공직사회의 문제를 파헤쳤다. 국회만 열리면 행정부는 올스톱됐으며 무분별한 순환보직의 폐해가 심각했다. 승진은 능력 아닌 고시 기수 위주로 이뤄졌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할 35가지 어젠다를 제시했다. 당시 출범한 노무현정부는 이 가운데 △복수차관제 도입 △고위공무원단 신설 △행자부 인사국과 중앙인사위 통합 등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같은 채용방식과 무능한 공무원을 솎아낼 퇴출시스템의 해법은 채택하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정책의 정치 예속화'만 더욱 심화됐다. 5년마다 돌아오는 정권 교체기에는 정치권 줄서기의 폐해가 극심하게 나타났다. 2000~3000명으로 추산되는 대선 기여자들의 처우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이들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행정에 불합리하게 개입하거나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와서 공공 부문에 손실과 비효율을 초래한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했다.

이제는 솔직하게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방법을 찾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여야가 협의해 특정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에 고문으로 배치해 정기적 급여를 지급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논공행상을 자리나 보직으로 해왔다. 그런데 부적격한 사람이 공공기관의 장으로 오면 많은 폐해가 생긴다. 국가적 손실을 줄이고 해당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는 유능한 사람을 발탁해 공공 부문 자리를 맡겨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을 뛰게 하려면 공직을 '정치의 속박'에서 풀어줘야 한다. 지금은 정치논리가 공직을 옭아매고 있어서 공무원들이 무력감을 호소한다. 이제라도 청와대는 큰 국가 어젠다만 챙기고 인원도 줄이고 각 부처 장관에게 국장급에 대한 인사권을 줘야 한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의회권력을 고려해 국회의 세종 분원 설치도 필요하다.

정부 조직과 일하는 시스템도 생산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의 낡은 정부 시스템은 전 세계에 불어닥친 공유경제와 인공지능(AI) 흐름을 거스르며 민간 부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과연 정부 조직이 시대변화에 맞게 편성되어 있는지, 부처별 업무의 우선순위가 제대로 잡혀 있는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공무원의 채용부터 평가, 퇴출에 이르는 지금의 낡은 공직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획일적인 고시제도는 폐지해 부처별로 채용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능한 사람은 승진시키고 성과를 올리면 경제적 보상을 하고, 무능하면 걸러내는 방향으로 인사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공무원이 일류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

[김대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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