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학회 디지털 사각지대 호소
암 조직 슬라이드 변질·폐기 잦아
과거 것과 비교 불가해 진단 장애
파일로 전환하면 신속·정확 진단
“건보 0.01%, 75억만 도와달라”
서울대병원 병리 전문의가 디지털로 변환한 암환자 조직을 화면에 띄워 검사하고 있다. [사진 병리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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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의 와중에 대한병리학회가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5일 조 장관의 딸(28)이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을 취소했다. 다음날 논문에 ‘Retracted(취소)’를 찍었다. 최근 단국대와 한국연구재단에 취소 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 평소 병리과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의사의 의사’로 불릴 정도로 진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과 의사가 “암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병리과 의사의 진단이 있어야 한다. 병리과 의사가 현미경으로 조직을 최대 400배로 확대해서 3000여회 시야를 옮기며 판단한다. 만성 간·신장질환, 자가면역질환(루프스 등), 장기이식, 근신경계 질환(루게릭 등)도 병리과 진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병리과가 병들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한 의료 현장에서 병리과는 아직도 질병 조직을 담은 유리 슬라이드를 들고나닌다. 서울대병원은 10년 전 슬라이드를 경북 문경 창고에 보관하다 갖고 온다. 환자도 이걸 들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 깨지고 훼손된다. 요즘 세상에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 다니는 꼴이다. 전산화의 거의 유일한 사각지대가 병리분야다. 그 폐해는 온전히 환자 몫이다.
조국 장관 딸이 1저자인 병리학회지 논문에 ‘취소’ 표시가 찍혔다. [사진 병리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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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10여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잘 관리했다. 최근 조기 위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위 근처 일부 림프절에서 전이된 암세포를 발견했다. 병리과 의사가 림프절과 위의 암 조직을 대조했더니 매우 달랐다. 과거 유방암 조직 유리 슬라이드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폐기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서너 가지 검사를 해서 유방암 전이로 추정했다. 정확도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는 최선책이었다. 유방암 전이냐 위암 전이냐에 따라 치료법이 완전히 다르다.
진료과목별 전공의 확보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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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방식은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 의료진이 B씨의 위암 절제 수술 후 남은 부위 조직을 떼서 병리과 의사에게 넘겼다. 암세포가 남지 않았는지 조직검사 했더니 종양 의심 세포가 나왔다. 수술 전 내시경으로 뗀 암 조직 슬라이드를 옆 건물 창고에서 가져와서 대조했다. 수술 시간이 20분가량 늘어났다. 환자 고통이 그만큼 가중됐다. 한 병원의 의료진은 환자(35)의 육종암이 매우 희귀해서 조직 슬라이드를 미국 전문가에게 우편으로 보내 자문을 구했는데, 진단이 한 달 이상 늦어졌다.
만약 유리 슬라이드를 디지털 파일로 바꿔 보관한다면? 파일을 고해상도 화면에 띄워서 병리 의사가 진단하는 ‘디지털 병리’ 방식이다. 현미경이 필요없다. A씨는 정확히 진단받았고, B씨는 개복(開腹)시간을 줄였을 것이다. 장세진 병리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교수)은 “5~10년 유리 슬라이드를 보관하는데 과거 것을 찾지 못하기도 하고 빛이 바래 못 쓰는 것도 있다”며 “유리 슬라이드를 하루빨리 스캔해야 진단시간과 오진 위험을 줄인다”고 말한다. 여의도성모병원 정요셉 교수는 “디지털 병리를 하면 국내외 의사들이 동시에 보면서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2017년 현미경 판독과 디지털 병리의 차이가 없다고 사용을 허가했다. 미국 피츠버그의대·메모리얼슬로언 캐터링 암센터를 비롯해 스페인·네덜란드·영국·스웨덴·일본 등지의 주요 병원들이 디지털 병리에 나서고 있다.
장 이사장은 “진료의 질을 높이고, 병리과 의사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건강보험에서 연 75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고 말한다. 한해 건보 지출(약 70조원)의 0.01%이다. 올해 병리과 전공의를 35%밖에 채우지 못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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