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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강제징용 재검토 지시 알려지자 “이인복 대법관이 질책” 법정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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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손을 들어준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의 페이스북 글을 올린 현직 법관이 지시한 당사자로 지목된 이인복 전 대법관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종엽 판사는 이같이 증언했다.

2015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던 이 판사는 어떤 사건의 의견서에 2012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인용했다가 홍승면 당시 수석재판연구관으로부터 ‘그 판결은 파기환송될 가능성이 있으니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2년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 승소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한번 내린 판단을 뒤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당시 강제징용 판결을 재검토한다는 정보는 대법원 내부에서도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판사는 이 전 대법관에게 이를 즉각 보고했다. 그런데 이 전 대법관은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태연했다는 게 이 판사 말이다. 이 전 대법관은 강제징용 판결을 내린 대법원 1부의 재판장이었다.

경향신문

대법원 대법정과 로비. 지난해 7월31일, 다음날 있을 3명의 대법관 퇴임식을 위해 미리 행사장을 준비해 놓은 모습과 유리문이 닫히면서 바깥 풍경이 투영되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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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사는 “다급하게 보고드렸는데 대법관님이 크게 놀라지 않으셨고 차 한잔 하자고 하면서 미쓰비시중공업 사건에 대해 말씀하셨다”며 “본인이 재판장으로 참여해서 나온 사건이지만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일관계에 파장이 클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파기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이어 “(이 전 대법관이) 다시 생각해보니까 50년이 지난 사건을 지금 와서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이 소멸시효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 이 판사도 이번 사건을 검토하면서 그 (강제징용) 판결을 봤을테니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 판사 말대로라면 이 전 대법관은 자신이 재판장으로 참여해 선고한 강제징용 판결을 스스로 잘못된 판결이라고 인정한 셈이 된다.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를 하던 지난해 7월 이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이 처음 알려졌다. 이 판사는 페이스북 글 게재로부터 2~3개월 후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이 전 대법관이 자신을 ‘질책’했다고 했다.

이 판사는 “검찰 조사 후 지시한 사람이 이 전 대법관이라는 기사가 나오니까 이 전 대법관도 여러차례 언론보도에 시달리게 됐다”며 “(저에게) 왜 그렇게 경솔한 일을 해서 사단이 나게 했느냐는 말을 했다”고 했다. 이 판사는 또 “(이 전 대법관이) 그때 말씀하신 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야기를 한 것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언론 보도는 부적절하지 않느냐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정작 이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9일 검찰 조사에서 이 판사와 정반대 진술을 했다. 이 전 대법관은 “너무 어이가 없다”며 “한일관계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2012년 판결 때 이미 생각했던 것이고, 판결한 이후에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진술했다. 이 전 대법관은 “파기환송 가능성을 제가 염두에 두고 이야기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측”이라며 “재판연구관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니 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철없는 소리”라는 진술도 했다.

이 전 대법관 진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검사 질문에 이 판사는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판사는 “이 전 대법관이 정확히 이 (강제징용) 사건을 파기해야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도장을 찍은 사건인데 이거 되게 아이러니하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며 “(이 전 대법관이) 소멸시효 문제와 한일관계 파장을 말하면서 ‘그때 내가 잘 했는지 모르겠다. 이 판사가 다시 검토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재차 말했다.

이 전 대법관은 2017년 3월 사법개혁 저지 의혹이 터진 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만든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진상조사위는 사법개혁 저지 의혹은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윗선 책임을 밝히지 않고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실체가 없다고 해 비판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내용을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문건으로 작성하게 시킨 혐의(직권남용) 등을 받고 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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