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 참가자 DNA까지 채취…헌재, 지난해 ‘헌법불합치’ 결정
연말까지 대체 법안 마련해야…현재 권미혁·김병기 대표발의 개정안 계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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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영원한 미제로 남을 뻔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아무개(56)씨를 찾는 데는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디엔에이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이 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번 사건에서 디엔에이법은 경찰의 과학 수사를 뒷받침하며 빛을 발했다. 이 법이 2010년 7월 시행되면서 살인과 성폭력 등 재범 위험이 큰 11개군 형 확정자 등의 디엔에이를 채취해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수형인 등의 디엔에이는 대검찰청이, 구속 피의자와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디엔에이는 경찰(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화성 사건의 경우, 경찰이 30여년 동안 보관 중이던 증거물을 지난 7월 국과수에 보내 재분석을 의뢰했고, 여기서 확인된 이씨의 디엔에이를 대검 ‘수형자 등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DB)’와 대조해 이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미제사건인 2001년 전남 나주에서 발생한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도 2012년 디엔에이 대조를 통해 수감자 중에 용의자를 특정했고, 사건 발생 16년만인 2017년 1월 법원에서 이 용의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렇게 미제로 흐를 뻔했던 강력범죄 해결에는 탁월하지만, 디엔에이법은 제정 전부터 신체의 자유, 사생활 보호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6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펴낸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보고서도 디엔에이는 단순히 개인 식별 정보뿐 아니라 건강 상태, 가족 식별 정보 등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유출이나 범죄 수사 목적 이외에 오남용됐을 때의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번 채취되면 재심에서 무죄나 공소기각 판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보관된다. 디엔에이 채취 과정에서도 개인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수사기관의 강요 등으로 무력할 수 있는 점, 영장이 발부되면 불복 절차가 없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시민단체에서는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디엔에이까지 채취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강력범죄 재범을 막는 취지로 제정된 디엔에이법이 노조와 사회운동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엔에이법이 살인·강도·성범죄 등 흉악범죄뿐 아니라 주거침입·폭력 사건 관련자에게까지 디엔에이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해두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쌍용차 파업농성자와 용산참사 철거민의 디엔에이 시료를 채취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며 이사실 회의실을 점거했다 ‘특수감금’ 유죄를 선고받은 한신대 학생들의 디엔에이를 채취하겠다며 검찰 조사관이 학교로 찾아가는 일도 있었다.
헌법소원이 잇따랐고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디엔에이법 제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재는 “디엔에이 채취 영장 발부 여부는 채취 대상자의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이 제한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중대한 문제”라며 “영장 발부 과정에서 당사자가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고 불복할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은 재판 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위헌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는 법 개정 시한을 오는 12월31일까지로 정했다.
이에 지난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2개의 디엔에이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이들 개정안들은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 맞게 디엔에이 채취 영장 발부 때 당사자 의견진술 기회를 주고 불복 절차를 마련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법사위에서 개정안에 대한 심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금껏 방치되어 있다”며 “연내에 개정이 안 이뤄지면 디엔에이법이 효력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국회에서 디엔에이법을 개정하면서 영장 발부 불복 절차를 마련하는 것 말고도 △채취 대상 범죄를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로 축소하고 △현행처럼 사망 때까지 보관하는 대신 범죄 종류별로 보관기한을 명시하고 △디엔에이 정보 관리·운용을 정부가 아닌 제3의 독립적인 기구에 맡기는 방안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훈민 변호사는 “디엔에이 채취는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해야 하는가의 문제인데 아직 한국은 개인의 자유, 권리에 대한 인식이 폭넓게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며 “화성 사건을 계기로 디엔에이 채취 대상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지훈 변호사는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디엔에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해진다”며 “국가가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적절한 감시와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진 서혜미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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