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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수사 경찰 "화성연쇄살인사건, 구천 떠도는 원혼들이 도와준 듯"…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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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목소리'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11년만에 유골 발견된 '개구리 소년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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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유병돈 기자] “구천을 떠도는 피해자 원혼들이 사건을 해결하라고 한 것 같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진 가운데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배용주 청장은 19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청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사건 비공개 배경설명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그 놈 목소리’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개구리 소년’ 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 최악의 3대 미제사건으로 꼽힌다.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1991년 1월 19일 이형호(당시 9세)군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집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후 44일 동안 64차례에 걸친 범인의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은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에 가명으로 계좌를 개설해 총 4000만원을 입금하라 지시했다가 10여곳의 공중 전화부스 등으로 몸값 인수장소를 계속해서 바꿨다. 형호군의 가족은 물론 경찰들까지 범인에게 내내 끌려 다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유괴범을 코앞에서 세 번이나 놓치면서 형호군을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형호군은 그 해 3월 13일 한강공원 인근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질식사 한 것으로 밝혀져 더 큰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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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26일, 개구리소년 추정 유골 발견 현장[이미지출처=연합뉴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같은 해 3월 26일 대구 달서구에서는 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인근 와룡산으로 놀러 갔다가 실종됐다. 실종 초기 가족들은 가출 동기가 없다며 주장했지만, 경찰은 ‘5명이나 한꺼번에 납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모든 군인과 경찰이 수색작업에 총동원되고 범국민적 운동까지 번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5명의 아이들은 실종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 도토리를 줍기 위해 와룡산에 올랐던 한 시민에 의해 유골로 발견됐다. 이때도 경찰은 아이들의 사인을 자연사라고 우기다가 타살이란 법의학적 결론이 나오자 범인 수사에 나섰으나 아직 범인을 특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리고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첫 시작은 1986년 9월 15일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였다. 이모(당시 71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달 뒤인 10월 20일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 농수로에서 박모(당시 25세)씨가 나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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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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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같은 해 12월 12일과 14일 권모(당시 24세)씨, 이모(당시 23세)씨가 잇따라 살해되며 화성연쇄살인사건이란 명칭이 처음 붙었다. 살인은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 화성시 일대 반경 3㎞내에서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모두 알몸이나 반나체 상태로 살해됐으며, 5년간 동일한 수법의 범행이 이뤄지며 총 1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모두 205만명의 인원을 투입해 용의자와 참고인 등 2만1280명을 조사했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지문대조를 한 용의자는 4만116명, 모발감정을 한 용의자는 180명이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 다른 범죄가 드러나 붙잡힌 사람만 1495명에 이른다.


범인은 주로 버스정류장과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있다가 범행했고, 흉기를 살해도구로 쓰지 않았다. 1990년 11월 15일 9번째 희생자 김양의 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도 제작됐다. 2007년 이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권씨 사건의 공소시효도 2006년 4월2일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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