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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살인의 추억' 송강호 실제모델 "내가 생각한 사람이 맞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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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 살인 사건 수사한 하승균 전 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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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을 찾은 하승균 전 총경 [연합뉴스]



“흥분돼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하승균 전 총경(73)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떨림이 묻어났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지난 18일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 전 총경이 수사할 당시 현장에서 채취한 유전자(DNA)와 일치하는 용의자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은 그동안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해왔다. 하 전 총경은 최근까지도 경찰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퇴직 후에도 사건에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형사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일생일대의 실패였다”라면서 “유력 용의자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고 말했다.

하 전 총경은 경기도에서 30년 넘게 경찰로 일하며 ‘과천 부부 토막 살해사건’‘광주 여대생 공기총 살해사건’ ‘양평 휴양림 일가족 살해사건’ 등을 해결한 강력계 베테랑 형사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가장 오래 수사한 경찰이기도 하다. 3차 사건 이후 수사팀에 투입돼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사건을 추적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송강호 배우)는 그를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다.



“현장은 증거의 보고” 샅샅이 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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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경기도 화성에서 5차 사건 현장을 살피는 경찰.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수원 경찰서 형사계장이었던 하 전 총경은 인접 경찰서 공조 차원에서 사건을 처음 만났다. 그는 “근처 경찰서에 있다 보니 화성 경찰서 수사본부에 방문해 도와주는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3차 사건이 터지고 경찰청 차원에서 수사본부를 설치하면서 하 전 총경도 사건에 직접 투입됐다. 자신과 함께 일하던 팀원 10명을 데리고 수사에 참여한 그는 수사지침을 받고 직접 현장을 누볐다. 범인의 행적을 찾기 위해 시신이 발견된 논바닥과 야산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발견한 시신 주변의 모든 물건을 수집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로 보냈다. 피해자의 옷은 물론 근처에 있던 담배꽁초, 버려진 우유갑 등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형사들이 늘 말하듯 현장은 증거의 보고”라며 “그렇게 현장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번에 빛을 발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7월 중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과수에 DNA 분석 의뢰했고 일부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유력 용의자 이모(56)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재범 저질러 반드시 잡힐 것”이라 확신



이번에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씨는 수사 당시 용의 선상에 없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하 전 총경은 “이씨가 당시 용의자였다면 DNA를 수집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면서도 “언젠가 반드시 잡힐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범행 수법을 보면 용의자는 범행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면서 “절대 범행을 그만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재범을 저질러 꼬리가 잡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25년째 수감 중이다.

하 전 총경은 지난 2003년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냈다. 책에는 1차부터 9차까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분석과 수사 상황 등 그의 모든 수사 기록이 담겼다. 그에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일생의 과제였다. 경기지방경찰청 강력주임, 수원 남부서 형사과장을 거치면서도 이 사건을 추적해 온 그는 2006년 2월 퇴직 후에도 사건을 떠나지 않았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확인했고 제보는 끝까지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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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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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 만료돼 처벌 못 하는 것에 화나”



그는 ‘유력 용의자를 잡았는데 왜 화가 났느냐’는 질문에 “유력 용의자가 밝혀졌지만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냐”며 “처벌을 하지 못하는 점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2007년 이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이다. 1991년 4월 3일에 마지막 사건이 벌어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하 전 총경은 “외국은 공소시효가 30년인데 우리는 왜 15년이었냐”면서 피해자 가족들과 고생한 동료·후배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당시 하 전 총경과 함께 수사한 팀원 중에는 과로로 쓰러져 퇴직하고 현재까지 팔·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경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이씨에 대해 “나잇대 등으로 보아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을 것 같지만 직접 확인해봐야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 전 총경은 이씨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 면회를 신청할 계획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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