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인기리에 방송됐던 드라마 '도깨비' 중 생을 마감한 한 시각장애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마중 나온 반려견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 많은 반려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tvN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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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런 저런 일 다 겪어봤지만 이만큼 내게 중요한 일이 있었을까’
제주도로 건너간 웹툰 작가가 노견 ‘풋코’와의 일상을 다룬 웹툰 ‘노견일기’에 나오는 한 문구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반려견을 키우는 지인이 작가에게 일도 못하겠고 반려견을 위해 남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며 한 얘기다. 얼마 전 수의사로부터 열여섯 살 된 반려견 ‘꿀꿀이’가 오늘을 못 넘길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난 뒤 “개를 떠나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 내용이기도 하다.
노견일기는 작가와 풋코와의 일상을 엿보는 것 이외에 웹툰에 달린 댓글을 읽는 것도 상당한 공감과 위로를 준다. “나도 겪었는데…”,”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싶은 것이다. 반면 그냥 개, 고양이일뿐인데, 세상엔 더 중요한 일이 너무나 많은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네이버 동물공감에서 연재 중인 웹툰 '노견일기'의 한 장면. 동그람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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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7개월. 반려견 꿀꿀이와 함께 한 기간이다. 동물검역에 필요한 반 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일본 도쿄까지 데려왔다. 어느 정도 반려견 양육 노하우에 자신도 있었고 나름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꿀꿀이가 새벽에 경련을 시작하고 수의사로부터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얘길 듣는 순간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오늘 아침 챙겨주는 밥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떠난 것도 아닌데 꿀꿀이가 쓰던 샴푸, 숟가락만 봐도 추억이 떠올랐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꿀꿀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웠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차라리 키우질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삶의 덧없음까지 느껴졌던 순간에 힘이 되어준 건 주변 사람들이다. 지인들은 울고 불며 횡설수설하는 얘기마저도 “그 마음 알 것 같다”며 위로해주었다. 이미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이들이 온라인에 올린 글도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됐다. 먼저 남은 시간을 불안과 두려움 대신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또 반려동물로 인해 분명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이는 앞으로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이별은 너무나 아프지만 만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꿀꿀이의 냄새, 감촉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네이버 동물공감에서 연재 중인 웹툰 '노견일기'의 한 장면. 동그람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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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나 고양이의 수명이 사람보다 짧은 걸 알면서도 유독 받아들이기 힘들어할까. 천방지축이던 동물들이 어느 새 우리보다 나이를 빨리 먹고 병이 들면서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 개와 고양이가 되는 과정, 즉 한 생명의 생로병사를 보게 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적어도 꿀꿀이는 내게는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을, 생명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을, 그리고 인간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까지 다시금 깨닫게 했다. 동물도 꿈을 꾸고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것을, 나아가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다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도쿄=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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