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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고공농성장 지키는 삼성중공업 해고자 이재용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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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 어디로 가나] "어떻게든 삼성의 잘못을 느끼게 해줄 겁니다"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강남역 사거리 교통 CCTV 철탑 위에 올라간 지 석 달이 넘었다. 김 씨가 있는 철탑 위는 한 사람이 눕지도 못할 만큼 좁은 공간이다.김 씨는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중 경남지역 삼성 노조 설립위원장으로 추대돼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정년인 7월10일을 한 달 앞두고 복직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석 달을 넘게 하늘 끝에 매달려 있는 심정은 어떨까. <프레시안>은 김 씨의 고공농성, 그리고 김 씨와 함께하는 사람들 관련해서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이 기고는'강남역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이재용 공조 고공농성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보내왔다.

대학 다닐 때, 한 노동조합에 갔다가 화장실 벽에 붙은 스티커를 보았다. 글만 빼곡히 적힌 스티커지만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납치, 감금, 폭행, 간첩 누명, 구속, 해고… 한 사람이 회사로부터 겪은 일이라고 했다.

당시 월드컵 광장에 붉은 악마가 등장하고도 한 해가 더 지난 때였다. 저 홀로 흑백 세상인 것 같은 스티커에 적힌 연도를 거듭 확인했다. 90년대 중반 사건들. 80년대 머문 일이 아니라 놀라웠고, 요즘 일이 아니라 안도했던 것 같다.

최근 우연히 그 스티커를 다시 보게 됐다. 삼성본사 인근 철탑에 올라간 예순의 노동자에 관한 글을 찾던 중이었다. 15년이 지나서야 스티커의 주인공을 알게 된 것이다. 고공농성 중인 삼성그룹 해고자 김용희 씨였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면 '어떻게 된다'는 소문은 무성했다.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기업, 아니 그래도 되는 기업. 2013년 'S그룹 노사전략' 이라는 노조파괴 문건이 공개됐을 때 과연 놀란 사람이 있기나 할까. 모두가 삼성의 권력을 '거기까지' 묵인했다.

그런데도 그 권력을 뚫고 삼성 안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계속 있어 왔다. 노조파괴 문건(2002년)은 이들을 'mj'라 불렀다. '문제 인력'. 문건까지 만들어 관리할 정도로 삼성그룹에는 수많은 'mj'가 있었을 테지만 우리가 들어본 이름은 극히 적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이재용 씨도 나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우리가 아는 그 이재용이 아니다. 동갑내기 김용희의 고공농성장을 지키는 삼성그룹 해고자, 이재용 씨다.

프레시안

▲ 삼성해고자 김용희 씨. 11일로 단식 39일째, 고공농성 32일째다. 눕지도 못할만큼 좁은 공간에서 한달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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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인력', 이재용

입사 다음해인 87년, 민주노조 열풍이 불던 시절. 이재용 씨와 동료들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했다.

"처음에는 필요성보단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리고 해서 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하던 노동교실 프로그램이 있는데. 회사에서 그걸 알고 니가 왜 교육을 받느냐. 그런 교육은 빨갱이 교육이다."

계속 가니, 감시를 붙였다. "세콤(삼성 계열의 보안경비업체. 이후 에스원으로 전환)이 저를 따라다녔어요. 퇴근을 해도 2명씩 붙어서." 달콤한 사탕도 건넸다. 하늘같던 부서장이 신입사원에게 밥을 먹자, 술을 먹자 해왔다.

"노동교실을 다닌다니까 얼마나 잘 해주는지. 일주일에 2번 교육이 있는데. 내일 교육이다 하면 오늘부터 너 내일 어디가지마라. 나랑 술 한 잔 하자. 나중에는 부장까지. 회사에서 너무 치밀하게 관리를 하니까 오기가 생긴 겁니다."

89년, 드디어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들고 도청에 갔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에는 이미 노조가 있다고 했다. "한 시간 전에 설립신고를 넣었대요." 주요 지역 창구 담당 공무원들까지 삼성이 다 구워 삶아놓았다는 소문을 그때 확인하게 된다.

대공분실, 협박, 테러

있으나마나 한 유령노조, 그리고 노동3권 없는 노사협의회가 사내에 존재했다. 노조설립에 실패한 이재용 씨는 협의회 대표로 출마하기로 한다. 출마 공약은 하나였다. 유령노조를 없애고 노동자협의회를 노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 "의외로 굉장히 득표를 많이 했어요. 봐라. 사원들이 노동조합을 갈망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 'mj'들처럼, 협의회장이 된 그에게 따라오는 것은 협박, 추문, 회유. 그 시절답게 '간첩' 누명까지 씌웠다. 도경 대공분실에 열한 번 끌려갔다고 했다. "백퍼센트 삼성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노동자가 대공분실에 왜 끌려갑니까." 노조설립을 포기한다는 각서만 쓰면 여기 더는 안 와도 된다고 했다.

"가뜩이나 회사에는 소문이 가득하지. 경찰이 툭하면 현장에 들어와 수갑 채워 끌고 가지.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 섞으려 합니다. 정말 빨갱이구나 해서."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잠깐 이야기 나눴을 뿐이지만, 그가 만만찮은 성격임은 짐작 가능했다. 94년에는 괴한에게 습격당해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한다. 회복 후 머리 붕대도 풀지 않고 경찰서로 갔다. 범인을 알려달라 했다. 지문 하나 발견된 것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그 자리에서 경찰서 집기들을 부셨다. "날 잡아 넣어라. 처음에는 이 새끼 저 새끼 하더니 나중에는 선생님, 제발 나가시라고. 그때는 형을 산다 이런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너무 분해서.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잖습니까." 잡히지 않는 괴한들은 삼성에서 노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곤 했다.

온 세상이 그만두라 하지만

그런 그조차 그만두어야 하나 갈등했던 순간이 있다. 딸들이 학교를 안 간다고 울며 버텼다. 학교 가면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 소리 듣고 정말. 그때 정말 그만둘 생각을 했습니다. 둘을 앉혀놓고, 그 어린애들을 앉혀 놓고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빤 간첩이 아니다. 회사에서 아빠를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다. 애들은 이해를 못하니까. 왜 나쁜 회사를 뭣 하러 다녀? 좋은 회사 다니지?"

나 또한 묻고 싶은 말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만두지 않았나. 인터뷰 흐름을 끊고, 이 말을 했던 것 같다. "살아오신 삶이 상상되지가 않아요."

나만 했던 의문일까. 도대체 왜 그만두지 않니? 온 세상이 그에게 포기하라고 했다. 회사는 갖은 폭력과 모멸로 그를 멈추려 했다. 주변은 그의 안위를 걱정하며 그만하라 했다. 가족들은 눈물로, 동료들은 배신으로 그의 발길을 잡아챘다.

그는 너무 많은 만류를 당했기에, '왜?'라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어졌다.

싸웠고, 기억에서 지워지다

때려도, 감옥에 가둔다 협박을 해도 그만두질 않으니 회사는 해고 절차에 돌입한다. 베트남에서 골프장 관리를 하라고 했다가 발전소 공사현장에 가라 그랬다가. 전환배치 통보가 계속됐다. "못 가겠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무단결근 처리를 하더니 15일 만에 징계위원회가 열립디다."

97년, 해고장을 받고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그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져 숨어 지내기를 8개월. 연대해준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 7명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있었다. 회유. "계속적으로 연락이 오는 거예요. 노조 포기 각서만 쓰면 복직시켜 주겠다." 그는 해고자로 남았고,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소속이 됐다.

그 뒤로? 계속 싸웠고, 동시에 자꾸만 잊혔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없으니까요. 처음에 해고되었을 때는 지역에서 같이 싸워주었지만. 우리가 노동조합에 속해 있으면 해고자 문제는 기억에 지워질 수 없는 거잖아요. 없으니까, 개인이 싸워야 하니까. 김용희가 올라갈 수밖에 없던 이유도 그겁니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고. 둘이서 삼성본관에서 일 년을 싸워도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 말을 듣자니 집 없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물 곳 없는, 기억해주는 사람 없는.

"지금 김용희 하는 이야기가 그거잖아요. 지금까지 이십 몇 년을 해고자 복직 싸움을 했는데 아무도 이렇게 연대를 안 해줬다. 위에 올라갔지만 행복하다. 어떻게 그런 말까지 나와요. 나는 그것이 노동조합 없는 설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 노조건설 과정에서 좌절한 이들이 갖는 주된 감정은 '홀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삼성은 창구 공무원부터 행정기관, 정치인, 경찰, 보안업체, 계열 카드사 등 온갖 네트워크 조직망을 형성해 사람을 옥죄는데, 자신은 홀로 서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사과를 받아낼 겁니다

혼자라는 감정은 기획되고 활용된다. 동료들은 배신한다. 어제까지 한 부서에 농담하고 지내던 동료가 오늘 회사가 불러주는 대로 확인서를 써 그에게 누명을 씌운다. 오늘 반갑게 본 동지가 회사에 밀고를 한 대가를 받고 사라진다. 어디 한두 번인가. "사람을 어떻게 믿고 사셨어요?"라고 물으니, "내 자신 믿고 살았죠" 한다.

그 말이 씁쓸해 자신의 무엇을 믿느냐 물으니, "내 의지…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들로 회유도 많이 당하고 협박도 당하고 그러면서도 저들과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 억 소리 난다는 회유에도 자신을 내주지 않았다. 그 강고하고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의지를 가지고 그는 생각한다.

"방법이 어떻게 되든 삼성이 잘못한 것을 느끼게는 해줄 겁니다."

2013년 국가는 그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그에 따른 명예회복과 보상을 구제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고자 이재용과 김용희가 원하는 것은 삼성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복직합의서다. 김용희 씨가 55일만에 중단한 단식을 최근 다시 재개했다. 그를 머리에 이고 이재용 씨의 거리생활도 계속된다. 회복도 보상도 이뤄진 것 없다.

"어떤 방법으로든 사과를 받아낼 겁니다. 어떤 방법이건."

그 어떤 방법이 혹시나 그것일까 내 쪽에서 고개를 저었다.

"고개 절레절레 흔드시지만 아닌 걸 물론 알죠. 원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면 사람 미치게 만드는. 그러니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거죠."

의지가 강한 개인이 홀로 존재할 때 무엇을 할 수밖에 없는지, 80여 일의 고공농성에서 이미 보았다. 자신의 생을 긁어내어 만드는 방안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잘못을 알게 해줄 거다' 그는 몇 번 더 이 말을 했고,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젓지 못했다.

프레시안

▲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이재용 씨. ⓒ공동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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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법이 우리로부터 만들어지길

홀로 존재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한가지다. 곁에 서는 것. 연대, 그처럼 쉽고 그처럼 어려운 말이 없다. 차마 입이 안 떨어져 연대란 단어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삼성그룹 최고 총수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조의 필요성이다."(이건희, 시사저널 2005.9.20.)

임금과 복지가 충분한 '불만'없는 회사임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실은 노동조합이 없을 때 얻는 이득을 너무 잘 알기에 나온 말이다. 작은 영세업체 사장님들도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산다. '일 시켜주는 것도 어딘데, 감히 노조가 왜 필요해.'

사장들만 노조의 필요를 부정하면 좋으련만 세상사 그렇지 못하다. 삼성을 노동3권 등을 명시한 헌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라고 부르지만,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노동에 있어 법은 힘이 없다. 그걸 넘어선다고 절대권력 운운하면 민망하다. 사업주들은 법을 피해가기 너무 쉽고, 노동자들은 형식적인 법 판결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다. 입법과 정부집행 기관마저 노조의 필요를 부정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쩌면 사회 전체가 삼성이 내건 무노조 전략에 동조하고 스스로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공고하다.

그러나 '그들'이 있다면, '우리'도 있기 마련. 세상이 다 알듯 삼성의 무노조 전략은 실패했다. 삼성전자, 삼성화재 애니카, 삼성서비스센터 등, 심지어 이재용 씨를 감시하던 에스원(당시 세콤)에도 노동조합이 세워졌다. 저 공고한 '그들'의 연대를 뚫고도 만들어진다.

만들어지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필요하니까.' 우리는 인간다움, 아니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를 원하니까. 노조설립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고공에 올라가는 이유도,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빨갱이'라 부르든, 'mj'라 부르든 그 단순한 바람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싸우는 사람들 곁에 서는 사람들도 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연대가 된다.

이재용 씨의 어떤 방법이 '우리'로부터 만들어지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기자 :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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