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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하비비 전 인니 대통령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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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2010년 11월 10일 하비비 전대통령이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청중들 사이에 앉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강연을 녹화하고 있다. 수하르토 하야 후 그는 민주적 개혁과 동티모르의 독립찬반투표를 허용했다. 향년 83세 / 출처; Barbara Walton, Pool Photo via AP



아시아투데이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11일 저녁 6시 5분 자카르타 시내 가똣수브로토 군병원에서 별세했다.

꼼빠스닷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국적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전국 관공서와 해외공관에 12일부터 사흘간 조기게양을 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수카르노와 수하르토의 뒤를 이은 제3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향년 83세였다.

1936년 남부 술라웨시 빠레빠레에서 태어난 그는 네덜란드 델프트 대학과 독일 RWTH 아헨 대학에서 비행항공학을 공부한 후 유럽에서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쌓았고 1974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요청으로 귀국해 곧 누산타라 국영 항공기산업(IPTN) CEO로 취임하여 인도네시아 기술발전을 이끌었다. 아직까지 자체 차량은 만들지 못하지만 인도네시아가 1980년대부터 헬리콥터와 소형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엔 그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하비비는 1978년부터 기술연구개발 장관으로 장수하다가 1998년 부통령 시절 외환위기와 자카르타 폭동으로 수하르토가 하야하자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과도기의 인도네시아를 무난하게 이끌었지만 1999년 동티모르의 독립을 불러오는 독립찬반투표를 허용하여 군부와 보수층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0년 사별한 부인 하스리 아이눈 브사리에 대한 그의 각별한 사랑은 매우 유명했다. 그 사연이 2012년 영화 하비비와 아이눈으로 제작돼 45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해 가장 흥행한 로컬영화로 속편들이 만들어져 그 세 번째 영화가 올해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이제 10년만에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 곁에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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