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사, 등대지기, 소방대원, 간호사들 근무지서 구슬땀
점등 116주년 맞은 인천 팔미도등대 |
(전국종합=연합뉴스) "명절 때 늘 출근하다 보니 이젠 가족들도 이해해줍니다. 제 근무로 다른 분들이 편안하게 연휴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코레일 대전 본사 종합상황실에 근무하는 조우현(54) 선임관제사는 올해 추석 나흘 연휴 중 사흘을 출근한다.
15년째 관제사로 일하는 그에게 명절 귀성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종합상황실에는 관제사를 포함해 차량 기술지원팀, 여객상황팀 등 100여명의 직원들이 3조 2교대로 분주히 움직인다.
조 관제사의 임무는 상황실 전광판에 펼쳐진 전국 모든 열차의 정상 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다.
사고나 고장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열차 기관사와 연락해 신속하게 대응조치를 한다.
남들이 풍성한 명절 상 앞에 모여 가족의 정을 나눌 때 그는 구내식당이나 대전역 근처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서둘러 상황실로 발길을 옮긴다.
조 관제사는 "저와 동료들이 전국의 열차 운행상황을 빈틈없이 챙겨 편안한 귀성·귀경길을 만드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며 "올해도 열차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철저히 근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원활한 하늘길을 담당하는 항공관제사도 명절 연휴가 더 바쁘다.
제주공항에 근무하는 조영직(40) 항공관제사 탑장은 "쉴새 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고 있으면 저도 고향인 대구에 가고 싶지만 안전한 하늘길을 열어 놓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항공관제사에게 명절 연휴는 말 그대로 전쟁이다.
평소보다 교통량이 5∼10% 늘어나면서 더 많은 근무자가 투입된다.
추석 연휴에는 제주공항 관제사 20명이 주간 7명(오전 9시∼오후 6시), 야간 4명(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씩 교대로 근무한다.
조 탑장은 "연휴에 구내식당도 문을 닫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거나 귀성객들로 북적대는 여객터미널에서 급하게 식사할 때 명절임을 실감한다"며 "이번 추석에도 빈틈없이 제주의 관문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코레일 조우현 선임관제사(왼쪽)·제주공항 조영직 항공관제사 탑장 |
1년 365일, 24시간 용광로가 가동되는 제철소 근무자들도 연휴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생산현장에는 설비가동을 위한 교대인원으로 약 3천500명이 근무한다.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부터 제강, 연주, 열연, 냉연, 도금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조업공정은 한 군데도 쉴 수가 없다.
용융로 안에서 만들어진 쇳물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출선 작업을 6년째 맡고 있는 박상우(32)씨도 이번 추석 연휴 중 12∼13일 이틀을 근무한다.
올해 5월 첫 딸을 낳은 박씨는 가족과 오는 14일에야 고향인 경북 김천을 찾을 예정이다.
그는 "업무 특성상 명절 전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리고 약속도 따로 잡는다"며 "연휴를 다 쉬지는 못하지만 대한민국 산업의 기초가 되는 철을 생산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배의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를 지키는 항로표지관리원(등대지기)들도 명절에 마음만 고향으로 달려가는 이들이다.
올해로 116년째 인천 앞바다를 밝히고 있는 팔미도 등대에도 3명의 등대지기 중 2명이 추석 연휴 내내 근무한다.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15.7㎞ 떨어진 팔미도 정상에 있는 팔미도등대는 1903년 6월 1일 첫 불을 밝힌 국내 최초의 근대식 등대다.
총 2천7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유·무인 등대의 맏형인 셈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등대지기가 하던 일 가운데 일부는 무선으로 가능해지기도 했지만 등대지기의 임무는 여전히 중요하다.
칠흑 같은 밤바다를 비추는 등명기가 잘 작동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날벌레와 같은 이물질을 제거한다.
안개가 끼거나 눈·비로 시야가 흐려지면 무선신호기를 작동시켜 등대가 음파표지 역할을 하도록 한다.
16년째 등대지기를 하며 인천의 4개 유인등대 근무를 모두 경험한 김성용(48) 팔미도 항로표지관리소장은 "가족과 명절을 함께 보내지는 못하지만 인천항에 드나드는 수많은 선박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보람과 사명감으로 등대를 지킨다"고 강조했다.
울산중부소방서 백명무 소방교(왼쪽)·포스코 직원 박상우씨 |
교대근무가 일상화한 소방대원과 간호사도 연휴와 인연이 없다.
울산중부소방서 구조대 소속 백명무(35) 소방교는 올해 추석에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다.
추석 전날인 12일과 추석 다음 날인 14일 모두 야간 근무여서 충북 제천에 계신 부모님 댁에 갈 수 없다.
추석처럼 연휴가 되면 119구조대 출동은 평소보다 배가량 늘어난다.
성묘객 벌 쏘임 사고나 발목 부상, 교통사고 신고가 잦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다퉈 신고가 접수되는 경우도 있다.
백 소방교는 "저 대신 시민들이 가족과 편안한 추석을 보낼 수 있다는 보람이 제게는 명절 선물"이라며 웃어 보였다.
암 치료 전문병원인 화순전남대병원에 근무하는 안영미(38) 간호사는 이번 추석 연휴에 이틀 쉬고 이틀을 일한다.
12년차 간호사인 안씨는 암 수술을 돕거나 병동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잠시 앉아 숨돌릴 틈도 없다.
안씨는 "고된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로 또 다른 역할이 기다리고 있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이 건네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는 "다들 고향을 찾는 명절에도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환자들과 그들의 곁을 지키는 모든 간호사가 따뜻한 한가위를 맞으시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유의주 손대성 백나용 김근주 장아름 신민재 기자)
s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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