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비용절감 vs. 인류건강 위협·업계 '로비' 결과
동물실험 대상이 된 쥐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동물실험을 줄여 2035년부터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동물 복지와 동물실험에 따른 비용 등을 고려한 조치로 설명되고 있지만 화학업계의 로비설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미국 정부 기관으로서는 첫 조치여서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전문 매체와 외신 등에 따르면 EPA는 10일(현지시간) 앤드루 휠러 청장이 화학물질의 안전도를 검사하기 위한 동물실험 요청과 예산지원을 2025년까지 30% 줄이고, 2035년부터는 사안별로 청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동물실험 요청이나 예산지원을 할 수 있게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EPA는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한 실험이나 시험관 실험 등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존스홉킨스대학과 밴더빌트 의료센터 등 5개 기관에 425만달러(50억6천만원)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휠러 청장은 지난 6월 한 매체에 유출된 내부 메모에서 "동물실험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면서 과학적 진전으로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도 화학물질의 안전도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적은 비용으로 검사할 수 있는 만큼 동물실험에 투입되는 EPA 재원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돌릴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PA의 동물실험 축소·금지 조치로 얼마나 많은 동물이 혜택을 보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EPA는 매년 제출되는 화학물질 독성 연구에 이용되는 동물이 2만~10만 마리가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PA 자체 실험실에만 토끼와 쥐, 기니피그, 개 등 2만 마리가 있어 스모그와 오존 등 환경오염물질의 안전 검사에 이용되고 있으며, 화학 업체들은 신제품을 낼 때 EPA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자체 실험은 물론 기업들에 대해서도 동물실험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 기관 중에서는 EPA 이외에 식품의약국(FDA)과 농무부, 교통부 등도 산하 기관에서 다양한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어서 파장은 EPA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당장 환호하고 나섰다.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는 사람들(PETA)'은 성명을 통해 "EPA 결정은 야만적이고 과학적으로 흠이 있는 동물실험 대신 현대적인 비동물실험으로 전환함으로써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과 환경도 보호하는 조치로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동물실험에 반대한 동물보호단체의 시위 |
동물실험을 예산 낭비로 비난해온 동물보호단체 '화이트 코트 웨이스트 프로젝트(White Coat Waste Project)'의 저스틴 굿맨 부총재는 한 매체와의 회견에서 "납세자와 동물, 환경의 결정적 승리"라면서 "미국 연방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동물실험 퇴출 계획으로 다른 정부 기관에도 황금률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의 수석과학자 제니퍼 사스는 "기본이 되는 과학적 검증 방법을 점차 줄여나감으로써 유독성 화학물질을 찾아내고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지게 됐다"면서 "매우 실망스럽고 좌절감이 든다"고 했다.
사스 박사는 특히 EPA 조치가 화학산업에는 "선물이 돼 유해한 화학물질에도 청신호를 주는 조작 시스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듀폰이나 엑손모빌 화학 등을 회원사로 둔 화학업계 로비 단체인 '미국화학협회(ACC)'가 움직여 온 것은 사실이며, 이번 조치와 관련해서도 성명을 통해 의회가 지난 2016년에 EPA에 새로운 실험 방법을 모색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고 지적하면서 새 접근법은 "수백마리의 동물을 구하면서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정부기관 중 처음으로 동물실험 퇴출을 선언한 휠러 EPA 청장 |
휠러 청장은 화학업체들의 로비 의혹과 관련, 동물실험 중단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사안이며, 이와 관련해 단 한 곳으로부터도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퍼듀대학 보건과학과 아론 보우먼 교수는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휠러 청장의 동물실험 축소·금지 계획이 찬사를 받을만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구체적인 시한을 둔 데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새로운 실험 방법은 인간의 생리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따라서 동물실험은 예기치 못했거나 위험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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