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1)
'삼인행 필유아사'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논어에 실린 글이다.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아 옳고 그름을 배우라는 의미인데 내 선친께서는 반상교훈(내 표현으로, 기독교의 산상교훈에 빗댄 밥상머리교육)을 통해 빗대어 자주 말씀하시곤 했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또 하나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리고 나머지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니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신 바 있다.
사람의 삶을 삼인행에 비추어, 또 선친의 표현대로 ‘필요’라는 세 가지 유형에 비추어 볼 때 내 삶에 있어서 스승이 되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사람의 삶을 인생3막으로 표현한다. 인생 제1막은 학창시절이고 인생 제2막은 직장생활, 그리고 인생 제3막은 퇴직 후 여생이라고. 그런 내 인생의 각 막에서 내게 본이 되는 스승은 누구였을까? 인생1막인 학창시절 나의 스승은 동작동 국립묘지의 묘비명이었다.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묘비명에는 돌아가신 선열을 기리는 가족들의 글이 적혀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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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찾은 동작동 국립묘지의 묘비명들에는 돌아가신 선열들을 기리는 가족들의 글들이 적혀 있는데 그 글귀들을 보며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가다듬곤 했었다. 인생2막인 직장생활 때의 스승은 어렵다고 느낄 때 자주 찾았던 재래시장의 상인들이었다. 지금이야 재래시장이 현대화됐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재래시장은 열악한 환경 그대로였다.
혹독한 겨울 날씨를 무릅쓰고 시장에서 추위에 떨며 삶을 이어가는 상인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여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불만과 직장생활의 버거움에서 오는 좌절을 잠재우곤 했으니 인생2막의 가장 큰 스승은 재래시장이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스승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좌절하고 괴로울 때 내 삶의 멘토가 됐던 국립묘지의 묘비명과 재래시장의 상인들을 떠올리면서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힘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나를 반성해 본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멘토가 되는 존재였는지 또 그런 존재로 인생후반부를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삼인행 필유아사에서의 스승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필요한 존재라고 해석한다면 나는 과연 그 범주에 드는 사람일까를 고민하면서 봉사에 대한, 기부에 대한, 타자에 대한 공헌이라는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된다.
봉사와 기부를 통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 누군가에게 본이 되는 삶을 강조하면서부터는 과거 인생1,2막의 삶과는 다른 그 무엇을 확연히 느끼게 되었다. 그런 느낌이 인생후반부 내 삶을 지탱하는 자존감을 충족시키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있어야 할 사람, 타인의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의 삶은 고사하고 저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 행태로 지탄을 받는 삶을 살아간다면 선친께서 지적한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는 것일게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자맥질을 하며 소라를 잡고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해녀의 삶은 직장생활을 마치고 인생 3막을 살아가는 내게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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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부의 멘토 해녀들과의 인연이 다른 이에게 필요한 역할을 생각케 했다.
봉사와 기부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통해 이러한 삶을 강조하는 나에게 비아냥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뭘 그렇게 성인군자인양 하냐고. 단연코 얘기하건대 나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게 봉사는 이타를 통한 이기의 실현이다. 인생후반부 이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봉사나 기부는 내게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 본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고, 그런 확신이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인생2막인 직장생활을 마치고 인생3막을 살아가면서 새 스승이 생겼다. 바로 해녀의 삶이다. 칠성판을 지고 바다에 드는 삶,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그녀들의 표현대로 지난한 삶을 극복해 낸 해녀. 기어코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들의 삶을 통해 나약해지고 이제는 사회의 뒤안길을 걷는 불행한 존재라고 느끼던 얄궂은 생각을 잠재우게 됐다.
해녀의 삶은 내게 인생후반부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케 했음과 동시에 새로운 봉사의 영역과 인생후반부 업에 대한 이정표를 세우게 했다.
취미로 그린 나무젓가락 해녀그림이 기부전을 열게 했고 갤러리 초대전에 전시되더니 급기야 제주로 이사하게 해 새로운 삶을 열어가게 하고 있다. 해녀가 살다 돌아가신 폐가를 5년 무상임대 조건으로 고쳐 살면서 이곳에서 해녀들에게 취미교실을 열어 봉사함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환경, 봉사, 창작교실을 마련해 체험의 장을 펼쳐 갈 계획이다.
취미로 그린 나무젓가락 해녀 그림으로 기부전을 열었다가 갤러리 초대전에 전시되었고, 이제는 제주로 이사해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있다. [사진 한익종] |
인생후반부 멘토로 삼았던 해녀의 삶이 내 인생3막을 지탱해 가는 힘이 돼 주었고, 새로운 봉사의 지평을 열어 사회에 필요한 존재로 내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해녀의 삶은 내게 삼인행 필유아사에서 밝힌 스승,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주었고 그를 본받아 새로운 봉사를 계획하는 나는 또 다른 이들에게 ‘필유아사’ 로서의 나를 가능케 한 것이다. 봉사는 결국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 본이 되는 삶을 가능케 해 인생후반부를 지탱해 가는 든든한 반려자이다. 그러니 내가 봉사를 ‘이타를 통한 이기의 실현’이라고 하는 것이다.
봉사는 인생2막까지를 지배했던 성공하는 삶과 남보다 잘사는 것이 타인에게 본이 되는 삶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인생3막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인생후반부의 가장 큰 스승은 봉사이다.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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