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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겨를] 비닐포장 없는 애호박 찾아 삼만리...두 기자의 ‘제로 웨이스트’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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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제로 웨이스트'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물티슈 줄이기. 이미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을 정도로 물티슈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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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라이프스타일 전국시대’다. 육식하지 않는 삶, 결혼하지 않는 삶, 생산자에게 이윤이 돌아가는 소비를 지향하는 삶, 고정된 성 역할을 거부하는 삶 등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제각각인 세상이다. 최근 몇 년 새 새로 등장한 용어 ‘제로 웨이스트’도 이런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쓰레기 없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바꾸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 있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이 130㎏이 넘는 현실, 쓰레기를 전부 소각하거나 매립하지 못해 컨테이너째로 외국에 수출하기까지 하는 현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들의 배속으로 들어가는 현실 등이 그렇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실천 방식이라는 것을 얼핏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만 같지는 않다.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가방에 챙겨 다니기만 하면 되겠지.’ 제로 웨이스트 체험에 무작정 뛰어든 두 명의 기자가 딱 그렇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주일의 제로 웨이스트 체험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카페에 가면 원치 않게 일회용품을 떠안게 되기 십상이었다.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찬거리를 구해 밥을 만드는 일은 고역 그 자체였다. 잇단 실패에서 얻은 게 하나 있다면, 여태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 노력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소비하고 버려 왔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제로 웨이스트라…죄송합니다" 홍인택 기자의 체험기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내겐 280㎡의 집과 차 2대, 테이블 4개, 의자 26개가 있었다. 그리고 매주 240ℓ짜리 쓰레기통이 꽉 찼다.”

“요즘 나는 가진 것이 적을수록 더 부자가 된 기분이다. 쓰레기를 내갈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이 몇 년 전에 바뀌었다. 커다란 집이 불타 버린 것도 아니고, 내가 불교에 귀의한 것도 아니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의 창시자로 꼽히는 비 존슨(Bea Johnson)은 저서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 좀 버리지 않았다고, 가진 것이 적을수록 더 부자가 된 기분이 드는 삶이 가능하다니. 15㎡ 남짓한 원룸에 살면서 매주 2ℓ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채우는 걸로 모자라, 한 주에 두 번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 집안 곳곳 비닐봉투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굴러다니는 삶에 저보다 달콤한 메시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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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찾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카페는 텀블러에 담는 음료를 10%를 할인해줬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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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저녁 우선 찻장을 열고 텀블러부터 찾았다. 취재와 기사 작성 사이 카페 여러 곳을 전전하는 ‘일과’ 시간 동안 가장 자주 만드는 쓰레기가 바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기 때문이다. 짐작해 보니 평소 하루에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적을 때는 1개, 많을 때는 서너 개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선물로, 증정용으로 받았을 텀블러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찻장에 있는 유일한 텀블러를 간신히 챙겨 출근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닌 일주일은 ‘자기 주장’이 필수적인 시간이었다.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가며 받는 ‘친환경 할인’부터 알아서 챙겨 주는 법은 거의 없었다. ‘텀블러에 담아가면 할인이 가능하냐’ 물으면 그제야 200원, 300원, 400원 음료 값을 깎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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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컵에 담아달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빨대를 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음료에 빨대를 꽂아주는 카페도 많았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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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 등 일회용 컵이 아닌 다른 플라스틱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도 필요했다. 텀블러를 사용하지 않고 유리잔에 음료를 담아 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특히 그랬다. 지난해 8월부터 카페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지만, “먹고 갈게요”라고 말해도 1회용 종이컵에 빨대를 꽂아 주는 경우는 여전히 있었다.

회사로 출근하는 날에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텀블러를 들고 외출하는 일이 몸에 익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점심 식사 후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같이 나온 팀장이 “커피 한 잔 들고 갈까”라고 묻자 그제야 텀블러를 자리에 두고 온 사실이 기억났다. “제가 제로 웨이스트 실천 중이라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곤 회사로 뛰어가 텀블러를 들고 나왔다.

먹을거리를 구하는 것은 마실 거리를 텀블러에 담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다. 카페나 편의점에서 1개씩 파는 바나나는 모조리 비닐 포장이었다.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바나나도 랩으로 포장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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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대형마트 3곳과 전통시장을 헤매다 발견한 일반 애호박(왼쪽). 인큐 애호박에 비해 비싸고 모양도 예쁘지는 않았지만 비닐 포장지를 줄이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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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장보기는 난도가 더 높았다. 7일에는 애호박 전을 부쳐 먹겠다는 일념으로 식재료를 담을 에코백과 빈 그릇들을 챙겨 장을 보러 나섰다. 그러나 ‘제로 웨이스트 애호박’을 찾는 일은 험난했다.

자취방 주변 마트 2곳과 걸어서 15분 걸리는 전통시장을 이 잡듯 뒤졌지만 발견한 건 봉지를 씌워 키우는 ‘인큐 애호박’ 뿐. “비닐 씌운 게 무르기도 덜 무르고 깔끔하지 않냐”는 시장 아주머니의 말에 뭐라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결국 전통시장에선 느타리 버섯 3,000원어치와 마늘 2,000원어치만 사서 나왔다. 그나마도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걸 거듭 사양하고서야 챙겨간 용기에 재료를 옮겨 담을 수 있었다.

비닐을 씌우지 않은 애호박을 찾은 곳은 세 번째로 찾은 마트였다. ‘인큐 애호박’보다 가격도 비싼 데다 모양도 울퉁불퉁 덜 예뻤지만, 난생처음 포장 없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보람에 비하면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로 웨이스트에도 장비가 필요할까? 조소진 기자의 체험기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면 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취방에는 텀블러조차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배달음식 시켜 먹을 때마다 넉넉하게 달라고 했던 일회용 젓가락과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을 보면 후회 섞인 한숨이 나왔다.

제로 웨이스트를 위한 ‘초심자 키트’를 구매하면서는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드는 건 아닌가’ 걱정도 들었다. 천 주머니에 나무 숟가락과 젓가락, 스테인리스 빨대, 세척용 솔, 손수건, 대나무 칫솔이 담겨 있었다. 필통 만한 주머니는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유용했다. 포장마차에서도 꼬치 대신 나무젓가락을 꺼냈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내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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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구매한 제로 웨이스트 초심자 키트, 나무 수저와 대나무 칫솔, 스테인리스 빨대와 빨대를 세척하기 위한 솔이 들어있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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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에 작별을 고하는 것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손걸레를 빨기 수고로워 물티슈로 방바닥이나 책상을 닦고, 화장실까지 여섯 발자국 떼기가 귀찮아 화장을 물티슈로 지운 적도 많았다. 크기별로 주문해둔 물티슈를 방 한 편으로 치우고 자취방엔 손걸레를 두고 가방에는 손수건을 챙겼다.

일회용품이 아닌 다회용품을 쓰기 전 가장 두려웠던 점은 매일같이 물건을 세척하고 빨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체험해보니, 개인 텀블러, 도시락 통, 숟가락, 젓가락, 손수건을 세척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하루에 10분 남짓.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금세 손에 익었다.

물티슈 한 장, 빨대 한 개 사용하지 않아 제로 웨이스트를 달성한 건 실천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속사포 랩’처럼 “영수증, 빨대, 물티슈는 필요 없고 텀블러에 담아주세요”라고 외쳐 원치 않는 쓰레기를 만드는 불상사를 미리 막았다. 파니니(이탈리아식 샌드위치)를 손으로 먹으면 물티슈부터 찾게 될까봐 준비해온 젓가락으로 남김 없이 먹었다. 제로 웨이스트 전쟁에서 일궈낸 아주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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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생활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물을 사먹어서 먹다만 플라스틱 병이 방에 많았다. 정작 사용해야하는 머그컵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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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첫 단계, 준비 없는 소비는 금물!

일주일간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뜻하지 않게 굴러 들어오는 일회용품을 막는 것도 쉽지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제로웨이스트 선구자들은 “적극적인 거절이야말로 쓰레기를 줄이는 첫 번째 단계”라고 이야기한다. 비 존슨 역시 쓰레기 없는 삶을 위한 첫 단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거절하기’를 꼽았다. 사용하지도 않을 빨대를 커피잔에 꽂아주는 걸 방치하는 행위는 “더 많은 일회용 빨대를 만들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숙박업소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 증정용으로 뿌려지는 플라스틱 제품, 결코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 영수증이나 명함 등 거부할 수 있는 ‘쓰레기’는 거부해야 한다. 비 존슨은 이를 위해 정중하고 악의 없이 거절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쓰레기 줄이기, 재사용, 재활용 등은 그가 제시하는 다음 단계다.

특히 일주일간의 실천은 무턱대고 제로 웨이스트에 덤빌 게 아니라 소비를 계획하고 대비하는 준비 단계도 중요하다는 가르침도 줬다. 전통시장이라고 포장지가 더 적을 것이라고 방심하고 장바구니 하나만 달랑 들고 갔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거나 비닐봉지만 잔뜩 들고 오는 결말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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