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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벼랑 끝에 선 사람들… 그 아픈 마음을 껴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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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세계 자살 예방의 날'

외로움·빈곤에 극단적 선택 고민… 비슷한 이웃들과 모임 만들어 밥 같이 먹고 고민 나누며 극복

"추석같은 명절이 가장 힘들어"

"일 년 중 추석 같은 명절이 가장 외로워."

4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영자(78)씨는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 혼자 산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는 사람들과 달리 김씨처럼 혼자 사는 이들에게 긴 연휴는 평소보다 더 힘든 시간이다. 김씨는 한때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할 정도로 외로움에 시달렸다. 김씨는 "외로운 게 몸 아프고 돈 없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혼자 살게 된 뒤 한동안은 밤새 형광등과 TV를 켜놓고 잤다. 매일 밤마다 유서를 썼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찢어버렸다. 아파트에서 다른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김씨는 "이러다가 나까지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서로 안고 소통해요" 서울 마포 자원봉사자들 생명 사랑 캠페인 -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성산종합복지관 앞에서 자살 예방 자원봉사 단체인 '명랑촌' 촌장 박미자(오른쪽)씨가 한 주민을 껴안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 2013년부터 매달 9일 자살 예방 홍보 활동을 해왔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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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넘기도록 도와준 것은 이웃이었다. 김씨는 지난 2014년 5월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위로해가며 살자는 뜻에서 '한마음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회비를 걷어 매달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70~90대 주민 17명이 가입해 있다. 얼마 전 김씨가 허리 통증으로 입원하자 회원들이 김치와 마른반찬을 만들어 병원으로 찾아왔다. 아파트 인근 삼산종합사회복지관의 이연진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처지의 주민들끼리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 의지하다 보니 모임이 오랫동안 이어진 것 같다"며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자부심이 생겼다는 주민도 많다"고 했다.

매년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성산사회복지관에서 자살 예방 활동을 하는 '명랑촌' 회원들은 매달 9일마다 자살 예방 캠페인을 벌인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성산종합복지관 앞은 '자살 예방 ○×(오엑스) 퀴즈'를 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었다. 한 자원봉사자가 "자살은 막을 수 있다, 없다?"고 묻자 한 어르신이 "있다"고 했다. 명랑촌 회원이 손뼉을 치며 "맞아요, 아버님. 백점, 백점. 자살은 막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명랑촌은 지난 2012년 서울 마포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3개월 동안 여러 주민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만들어졌다. 일부 주민들이 임대 재계약을 앞두고 주거와 생계 불안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명랑촌의 한 회원은 집에 있다 아파트 관리실 방송으로 이웃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 그는 "방송을 함께 듣던 아이가 '엄마, 이거 처음 아니야. 며칠 전에도 이런 방송 몇 번 했어'라고 했다"며 "이웃끼리 서로 모르고 지냈다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뜻을 같이한 아파트 주민들과 인근 지역 이웃들이 모여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회원들은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명랑촌 촌장인 박미자씨는 "활동 초기 우리가 안아주면 어색해하던 주민들이 이젠 '내 딸 왔어?'라며 더 꼭 안아준다"며 "이웃 간에 소통의 다리만 만들어줘도 많은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우울증은 고령자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갈 수 있다"며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도 지역 공동체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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