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 대변인 거듭 비판
“한국 방어 더 복잡하게 해”
미 대사관선 한글 번역 리트윗
한국 국민에 직접 메시지 전달
한·미훈련 비용 불만 많은 트럼프
‘주한미군 감축론’ 근거 삼을 수도
지소미아 파기 철회 압박 거세져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5일 오후 5시15분(현지시간) 대변인 공식 트위터 계정으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우려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을 방어하는 것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more complicated) 미군에 대한 위협(risk)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국무부는 22일 오후 6시40분(현지시간)에도 대변인 명의로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갱신을 보류한 것에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약 하루 뒤인 23일 오후(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단은 절제된 반응을 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국무부는 강한 메시지를 재차 내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국이 외교 서한 전달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 절차를 실제 완료한 게 배경이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무부가 처음 “실망했다”고 밝힌 시간은 한국시간 23일 오전 7시40분이었고, 외교부는 이날 오후 3시30분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 지소미아 종료 의사를 담은 구술서를 전달해 종료 요건을 충족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의 25일(현지시간) 트윗도 ‘지소미아 갱신 보류에 대한 실망’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지소미아 종료 검토 과정에서 미측과 수시로 소통했다. 한·미 동맹의 약화가 아니라 오히려 한·미 동맹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다”고 강조했지만 국무부는 비판을 이어간 것이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이 트윗을 올린 25일은 휴일인 일요일이었다. 주한 미 대사관은 5시간18분 뒤인 26일 오전 10시33분(한국시간) 공식 트윗 계정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리트윗했다. 미 정부가 한국 국민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엔 사흘 전에 없던 표현들이 들어갔다. 지소미아 종료가 한국 방어와 미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콕 짚었다. 점증하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등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트럼프 “연합훈련 돈 낭비” 다음 날 미군 안전 거론한 미국
외교 소식통은 “지소미아 종료로 인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한반도 방위 공약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군비 팽창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미 주둔군의 안전과 지소미아 종료를 연결한 것은 미국이 이번 결정을 자국의 안보 이익과도 직결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무부는 23일에도 “미국은 이번 결정이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맹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문재인 정부에 거듭 분명히 했다”고 했는데, 추가 입장을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더욱 표현 수위를 높이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의 전조로도 보고 있다. 정부가 내린 결정이 한·미 동맹의 안보에 위험성을 키운 만큼 한국이 여러 측면에서 방위 유지를 위해 더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미국의 이런 강경한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적 있는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필요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5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나 양국 회담을 시작하며 한·미 연합훈련을 ‘전쟁 게임(war games)’으로 부른 뒤 “완전한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연합훈련=돈 낭비’ 논리는 궁극적으론 ‘주한미군 불필요론’으로 향할 수 있다. 장기간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주한미군의 전력 유지가 불가능해지고, 한국에서 훈련도 하지 않는데 굳이 한국에 주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상징적 명제이자 향후 발전 방향도 연계돼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한미군에 부정적인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하는데 이를 감지하고 경계할 역량이 약화하고 있으니 ‘우리 젊은이들을 이런 위험한 곳에 왜 둬야 하느냐’는 식의 접근법을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반복적으로 실망과 우려를 표한 자체가 심상치 않다는 게 외교·안보 부처 안팎의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부처 소식통은 “동맹에 대해 미국이 실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2013년 12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말고는 못 들어본 것 같다. 당시 미·일 동맹에는 여진이 상당 기간 지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당시엔 아베 총리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된 정치적 문제였지만, 이번엔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안보와 직결시켰다는 점에서 ‘뒤끝’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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