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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북ㆍ중은 반기고 미ㆍ일과 공조 균열… ‘지소미아 종료’ 한국 득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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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규제 日 부당 조치에 대응… 분노한 시민사회 등 지지 얻어

美측 부정적 기류 확산되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걸림돌
한국일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23일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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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적폐 청산과 나아가 극일(克日)을 희구하는 현 정권 지지층의 목소리가 상당히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전통적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의 균열까지 감내한 이런 대내 노림수가 북한ㆍ중국의 환심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방 일본은 물론 동맹 미국마저도 이런 ‘균형 외교’를 탐탁해할 리 없다는 점에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본과의 지소미아를 깨뜨려 한국 정부가 얻은 건 무엇보다 현재 반일(反日) 불매운동이 한창인 국내 시민사회의 지지다. 정부 발표가 이뤄진 22일 기자들을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들의 의사가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거의 매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편승한 감정은 대중의 분노다. 23일 영국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1일 진행된 ‘BBC 하드토크’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통제 강화와 관련해 “한국은 화가 나 있다”며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부당하다는 감정이 남아 있는데 일본이 아직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2ㆍ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줄곧 남측에 냉랭한 북한과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로 빚어진 갈등의 골이 여전히 깊은 중국에게 지소미아 폐기가 유화 제스처로 활용될 수 있다. 그들의 인식이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은 관영ㆍ선전 매체를 통해 지소미아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한반도 재침략의 발판을 만들어주는 ‘매국 협정’이라고 비난하며 폐기를 주장해 왔다.

중국 역시 패권 경쟁국 미국의 역내 대중(對中) 안보 공조와 미사일방어(MD) 구상을 흔드는 한국의 결정을 내심 반기고 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군사안보 협력을 개시하거나 중지하는 것은 주권 국가의 자주적 권리”라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지소미아 틀 안에서 한일 간에 주로 교환된 게 대북(對北) 정보였기 때문에 중국은 몰라도 북한 요소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이 호응해 올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교착 중인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데 조금이라도 유리한 여건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잃은 게 적지 않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지소미아가 종료됐다고 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이 와해되거나 일본과의 정보 교류가 완전 차단되는 건 아니”라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문제는 한미일 안보 공조의 토대이자 MD 구축의 입구라는 지소미아의 상징성이다. 당장 미 국무부ㆍ국방부가 22일(현지시간) 이구동성으로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미측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이례적으로 거친 미국의 반응은 미국과의 사전 협의가 불충분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며 “한국이 한미동맹을 어떻게 관리해나갈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도 미국을 자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타깃 설정이 잘못되는 바람에 사실상 미일동맹의 하위에 한미동맹이 놓이는 기존 구도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이 아파해야 하는데 미국이 불쾌해하면서 미일동맹 우위인 운동장이 더 기울어지는 자해적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다소 음모론적 시각이지만 지소미아 파기는 미국이 한국을 원망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본이 파놓은 함정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일본 로비의 막강한 영향력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은 워싱턴에서 “한국이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는 부정적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한국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그럴 경우 문재인 정부가 미 주류의 강경한 대북 정책을 전환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척시키는 데 어려움이 커질 거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안보 협력 저해를 양해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한국에게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 이르면 9월 중순 개시될 내년 이후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미국의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하거나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 공동호위에 동참해달라는 미 요청에 마지못해 호응해야 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신뢰가 손상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위안부 합의와 청구권 협정에 이어 지소미아까지 한일 간 조약을 걸핏하면 깨는 한국은 못 믿을 나라라는 식의 선전전을 일본이 강화할 수 있어서다. 한일 경제 전쟁 확전으로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호전적 정책에 비판적이던 일본 시민 사이에 지소미아 파기라는 초강수를 계기로 반한(反韓) 정서가 싹틀 수 있다는 점도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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