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립 150주년을 맞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가 작년 가을 아키히토 상왕(86)에게 신사 참배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거리낌이 없는 일본 정치인들과 대비된다. 1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는 지난해 9월 당시 아키히토 일왕에게 창립 150년을 기념하기 위해 참배를 요구하는 매우 이례적인 청원을 궁내청에 했다. 그러나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왕위 계승을 앞둬 매우 바쁘다는 이유로 참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야스쿠니 신사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야스쿠니 신사 측은 거절당했다고 판단해 재요청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이후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혼을 떠받드는 시설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6000여 명이 합사돼 있다. 지난 4월 30일 퇴위한 아키히토 상왕은 30년3개월에 걸친 재위 기간에 보수층에게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과거 일왕들은 참배를 했다. 야스쿠니 신사 창립 50년인 1919년 5월 당시 요시히토 일왕에 이어 창립 100년인 1969년 10월 당시 히로히토 일왕이 각각 참배했다. 이후 일왕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1975년 히로히토 일왕이 마지막이었다. 아키히토 상왕은 야스쿠니 신사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아키히토 상왕은 그동안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여러 차례 반성하는 뜻을 표명해 주목받았다. 즉위 이후 1992년 중국, 1994년 하와이, 2005년 사이판, 2016년 팔라우, 2017년 필리핀 등 전쟁 피해국을 방문했을 때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회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전쟁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사이판 방문 때에는 일본군 위령비 외에 태평양한국인위령평화탑을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그는 재위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때 "불행한 시기에 한국 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면서 사과하는 뜻을 전했다. '통석의 염'은 몹시 애석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생일 때 "헤이세이가 전쟁 없이 끝나게 된 것에 안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상왕은 2차 세계대전 중 미군 공습 당시 고쿄(일왕 거처) 내 방공호에서 생활한 적이 있고, 11세 때 피란지인 닛코에서 종전을 맞았던 경험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잘 알고 있다. 지난 5월 1일 즉위한 '전후(戰後)세대' 나루히토 일왕에게도 평소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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