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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교육 공공성·균형발전 도움…“공영형 사립대” 커지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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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사립대 지원해주고

공익이사 증원·투명성 강화

사학 폐단 해소·균형발전에 도움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까지 1석3조

기재부서 예산 삭감 탓 추진 더뎌

교육시민단체 “시범사업부터라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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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공영형 사립대’를 단계적으로 육성·확대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인 2017년 7월1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가운데 일부다. 공영형 사립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임기 3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한 대학은 한곳도 없고 뚜렷한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 공영형 사립대가 뭐기에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가 발전 가능성이 큰 사립대에 재정과 운영을 지원해 공공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다. 대학 운영비의 50%를 국가가 책임지는 대신 이사 정수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꾸리게 해 사학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식이다. 이사 추천도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 인사 등을 포함할 수 있고, 이사장 친족의 총장 임명을 제한하고 국립대 수준의 재정·회계 투명성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있다. 한마디로 지배구조 개편과 투명성 강화를 통해 그동안 사립대의 폐단으로 지적된 족벌경영 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공영형 사립대다.

한진그룹의 ‘갑질·족벌 경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천의 인하대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 구성원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학교 정상화를 위한 방안으로 ‘공영형 사립대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 운영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확보해 사학비리 척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최길재 인천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는 “정부가 사립유치원 공영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사립대 공영화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인하대처럼 재벌그룹의 전횡으로 표류하는 학교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에 지역구를 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공적 기관인 대학이 특정인에게 좌지우지되는 폐단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사립대 공영화를 통해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영형 사립대는 국가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수도권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이 추진되면, 재정과 학생 수 부족으로 파산하는 지방대학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의 대학부터 없어질 것이라는 이른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주의와 지역 소외 현상 등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재형 조선대 민주평화연구원장은 “지역에 수도권 인기 대학에 상응하는 공영형 사립대학이 있다면 지역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도 막을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균형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 위기의 한국 대학교육

공영형 사립대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 대학교육이 처한 위기 탓이다. 해방 이후 한국의 고등교육은 사실상 민간이 책임져왔다. 교육통계서비스와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 5월 발간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 방안’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1945년 해방 당시 29곳이던 대학은 2018년 430곳으로 늘었다. 문제는 증가한 대학 대부분이 사립대라는 점이다. 국공립대는 1945년 19곳에서 2018년 58곳으로 3배가량 늘었다. 반면 사립대는 10곳에서 372곳으로 무려 37배나 폭증했다. 전체 430개 대학 가운데 사립(372곳)이 차지하는 비율은 86.5%에 이른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사립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각각 이 비율이 19.8%와 40.1%다. 초·중등교육과 달리 대학교육만큼은 공공이 아니라 민간에 방치됐던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대다수 국가들은 대학교육 대부분을 정부가 책임진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오이시디 교육지표’(2016)를 보면, 국공립이거나 정부의존형 사립교육기관에 등록한 학생의 비율은 프랑스·독일·영국 100%, 오스트레일리아 94%, 이탈리아 90%, 미국 68% 등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이 비율이 19%에 그쳤다. 대학생 10명 가운데 8명꼴로 독립형 사립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부담하는 공교육비 비중을 봐도 오이시디 평균은 69%, 유럽연합(EU) 22개 나라 평균은 78%인데, 한국은 36%에 불과하다. 그만큼 한국은 대학교육의 대부분을 사립대에 의존해온 것이다.

이런 체제는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한계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정원을 줄이거나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부정·비리로 얼룩진 사립대라고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인 등록금 덕분에 버텼지만 학생 수 감소 탓에 더는 등록금에 의존해온 대학 운영 방식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공영형 사립대 혹은 정부책임형 사립대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유다.

■ 공영형 사립대 언제쯤?

다만 많은 일반 사립대의 경우,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기 전까지는 설립자나 법인이 대학 운영권을 내주고 감시도 더 받아야 하는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길 꺼리고 있다. “학교에 대한 정부 통제가 과도하게 강화될 수밖에 없는데 굳이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 상당수 사학들의 목소리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공영형 사립대에 관심을 보이는 학교는 설립자 등 이른바 ‘주인’이 사실상 없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학교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상지대다. 사학분규의 대명사였던 이 학교는 2016년 대법원 판결로 임시이사 체제를 꾸릴 수 있게 되면서 정상화 기틀을 마련했고,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직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이렇게 뽑힌 정대화(63) 총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전국 1호 공영형 사립대 지정’이다. 상지대는 2017년 10월부터 공영형 사립대 준비기획단을 꾸려 준비해왔다. 정 총장은 “상지대는 옛 이사장의 재단 복귀에 반대하며 사립대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수십년 투쟁한 대표성이 있다. 공영형 사립대의 최적 모델”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민립대학인 조선대도 관심을 보인다. 조선대 민주평화연구원은 지난 6월 ‘지방 사립대학의 공영화와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조선대는 1988년 옛 경영진이 물러난 뒤 22년 동안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다 2010년에 정이사 체제로 전환해, 2017년에는 임시이사가 파견된 상태다. 이건근 조선대 민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시민이 국가를 대신해 기금을 모아 설립한 대학인 만큼 이제는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고 구성원이 직접 운영하는 공영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대구대와 영남대 등도 공영형 사립대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책 추진 과정은 더딘 상황이다. 교육부가 요구한 관련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지적했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전 상명대 교수)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3년차에 접어들었다. 사학비리를 청산하고 공공성을 높일 가장 좋은 정책인데 더 미루면 이번 정부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한꺼번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게 문제라면 몇몇 학교를 지정해 시범사업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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