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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인민일보 "美는 홍콩 간섭말라, 1842년의 중국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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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때 英 함선 사진 담은 동영상 게재하며 미·영에 경고

英, 홍콩행정관에 시위 조사 요구… 中 "내정간섭 중단하라"

조선일보

중국 인민일보가 웨이보에 올린 동영상 장면들. ‘중국은 이미 1842년의 중국이 아니다’는 글귀에 현재 고층 빌딩이 빼곡한 홍콩과 과거 서양의 함대가 홍콩으로 보이는 항구에 몰려드는 흑백 사진을 위아래로 대비시켰다.(왼쪽 사진) 이 동영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홍콩 시위를 지지한 미국 인사들을 배경으로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외부 세력의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는 글귀와 붉게 ‘홍콩’이라고 쓰인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인민일보


홍콩 시위 사태가 미국과 중국의 외교 갈등으로 비화한 가운데 중국 인민일보가 미국을 향해 '중국은 이미 1842년의 중국이 아니다'라며 경고했다. 1842년은 중국이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홍콩을 잃었던 해로, 중국이 근현대사 최대의 치욕으로 기억하고 있다.

인민일보는 지난 10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세계에 알린다: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중국은 1842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1분 25초짜리 동영상을 게재했다. 동영상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중국을 비판하는 펜스 부통령, 펠로시 하원 의장,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과, 홍콩 시위 지도부와 홍콩 주재 미국 영사가 만나는 장면 등을 차례로 보여주고 이에 대한 중국 외교부 화춘잉·겅솽 대변인의 그간 반박을 담았다.

영상은 '미국에 경고한다. 홍콩에 대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는 문구에 이어 '중국은 이미 1842년의 중국이 아니다'(中國早已不是/1842年的中國)라고 경고했다. 이 장면에선 고층빌딩이 즐비한 오늘의 홍콩과 영국 함선이 몰려오는 1842년 당시의 사진을 위아래로 대조시켰다.

인민일보는 11일에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계정에 영국까지 포함한 경고 메시지를 올렸다. 인민일보는 "주권도 통치권도, 감독권도 없이 홍콩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원숭이가 갓을 쓰고 사람처럼 노는 격"이라며 "영국과 미국의 일부 정객은 과거의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미 1842년의 중국이 아니고 지금의 홍콩은 너희가 자기 마음대로 하던 식민지가 아니다"라며 "그걸 깨닫는다면 뻗친 손을 거두고 선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1842년은 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넘겼던 해다. 이후 홍콩은 150년 넘게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중국은 1997년 홍콩의 주권을 넘겨받음으로써 한 세기 넘게 지속된 긴 치욕을 씻었다. 인민일보가 연이틀 자국의 역사적 치부를 스스로 꺼낼 만큼 격하게 반발한 것은 친중 매체 대공보가 홍콩 시위 지도부와 만난 홍콩 주재 미 영사의 신원과 자녀 이름까지 공개한 것을 두고 미국이 거세게 반발하고, 설상가상 영국 외무장관까지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나서며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앞서 미 국무부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9일 트위터에 중국 매체의 미국 영사 정보 공개에 대해 "무책임함을 넘어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지난달까지 주홍콩·마카오 미국 총영사를 지냈던 커트 통도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대공보가 그 정도로 비열해진 것을 보고 질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외교관들은 다양한 정치적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며 "그건 중국 외교관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이 지난 9일(현지 시각)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해 홍콩 시위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한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외무부에 따르면 라브 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의미 있는 정치적 대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하고, 최근 사건에 대한 철저한 독립적 조사도 신뢰를 쌓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력적 시위를 비난하면서도 평화적인 시위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10일 화춘잉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오늘날 홍콩은 중국의 한 특별행정구로 더 이상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성명은 "영국이 홍콩 사안에 개입하는 행위를 즉각 멈추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도 중단할 것을 엄정히 요구하며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선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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