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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억만장자 옥중자살… 트럼프 배후說, 클린턴 배후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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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4시간 감시 받는데 자살?" 리트윗으로 음모론 불지펴

빌 클린턴이 죽음의 배후임을 암시하는 글, 근거 안 밝히고 올려

조선일보

14세 소녀 등 미성년자 20여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수감 중이던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66·사진)이 10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교도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도소 측은 그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밝혔지만, 그가 '모종의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지 진영이 서로 상대 진영을 살해 배후로 지목해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엡스타인이 트럼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양측 모두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0~11일 트위터에는 '#ClintonCrimeFamily(클린턴 일가 범죄)' '#ClintonBodyCount(클린턴 관련 사망자 수)'와, '#TrumpEpstein (트럼프와 엡스타인)' '#TrumpBodyCount(트럼프 관련 사망자 수)' 해시태그가 경쟁적으로 확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 사회가 정치·이념적으로 얼마나 두 쪽 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조선일보

1992년 트럼프와 함께한 엡스타인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이 1992년 11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웃으며 귓속말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NBC방송이 지난달 17일 공개한 것이다. /미 NBC 방송


음모론 논란을 증폭시킨 사람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이날 보수 성향 코미디언 테런스 윌리엄스의 트위터 글을 리트윗(재전송)했다. "24시간 자살 감시를 받는 사람이 자살로 죽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엡스타인은 빌 클린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그 결과) 그는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의 죽음의 배후임을 암시하는 이 글에 대해 트럼프는 아무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가족의 이벤트 기획자 출신인 린 패튼 주택도시개발부 관리도 인스타그램에 엡스타인 사망 기사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힐러리화(化)됐다(Hillary'd). 빈센트 포스터 2부(part two)"라는 글을 올려 힐러리 연루설을 주장했다. 빈센트 포스터는 클린턴 전 대통령 행정부에서 백악관 법률고문이었는데, 1993년 7월 돌연 숨진 채 발견됐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포스터의 죽음과 관련한 음모론에 불을 지폈고, 그의 지지자들은 '힐러리가 포스터를 죽였다'는 타살설을 퍼뜨렸다.

진보 진영 인사들은 정반대로 엡스타인 죽음의 배후로 트럼프를 지목하며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뉴스위크 칼럼니스트인 세스 에이브럼슨은 트위터에 "엡스타인 관련 사실: 그는 트럼프와 수년간 '베스트 프렌드였다'고 말했다"고 올렸다. 로이스 프랑켈 민주당 하원 의원은 언론에 "엡스타인이 죽기를 원하는 막강한 자들이 많이 있다. 정말 자살이었을까"라고 말했다. 클레어 매캐스킬 전 민주당 상원 의원도 "높은 곳에서 악취가 진동한다. 어떻게 조력 없이 교도소에서 목을 매 죽을 수 있나. 불가능하다. 만약…"이라고 했다. 로런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법학 교수는 "누가 엡스타인의 영원한 침묵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지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음모론 확산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 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에게 근거 없는 살인 혐의를 씌워 미국 사회를 흔들었다"며 "그는 여전히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저점(new lows)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 의원은 "상대편을 공격하는 음모론의 즉각적 확산은 왜 미국 사회가 외국의 가짜 뉴스 공세에 취약한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엡스타인 죽음에 대해 즉각적인 조사를 지시했고, 미 연방수사국(FBI)도 별도 조사에 돌입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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