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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도쿄의 책갈피]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그들…그래서 참 복잡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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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너와 나의 전쟁

구라시노데초 편집

<전쟁이 서 있었다: 전중, 전후 생활의 기록-전중편>


‘구라시노데초(생활수첩)’는 요리와 일상을 다룬 잡지로 1948년 발간 이후 계간·격월간 등 발행시기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이 잡지는 인간의 행복한 일상의 바탕에는 반전과 평화가 있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겪은 이들의 투고를 받아 싣고 있다. 발간 70주년을 맞이한 ‘구라시노데초’는 그 기록들을 얼마전 3권의 책으로 내놨다. 그중 전쟁 당시 상황을 <전쟁이 서 있었다>로 묶었다.

“절대로 원하지 않겠습니다, 이기기까지는” “1억 총동원”이란 표어하에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고 남은 여자들이 우편물 배달을 도맡는다. 당시 17살이던 구즈오카 야치요는 전쟁터에서 온 편지들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배달하러 다닌다. 군수공장으로 끌려간 오빠는 결핵에 걸려 돌아와 이듬해 사망한다. 그녀는 당시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던 시절”이라고 설명하며 다시는 어느 나라도 이런 전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사이판에 살던 8살 고다마 가즈코는 최악의 상황을 목격한다.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일본인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이들은 목이 마르다고 배가 고프다고 울어젖힌다. 일본 군인들은 “우는 아이는 죽여라! 방공호에서 나가라! 우리랑 아이 누가 더 중요하냐?”고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그러자 서서히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지고 엄마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군인들 손에 죽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손에 죽는 것이 낫다며 우는 아이를 죽인 엄마들은 다음날 바다로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들이 방공호에서 아이를 살해하는 일은 오키나와 전투 때도 일어났다. 일본군의 부추김에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 것이다. 고다마 가즈코의 3개월 된 남동생은 아버지 손에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미군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일본은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사이판 현지 사람들의 생활이나 식민지 조선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는다. 이 책에 투고한 이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동원’되었다고 말한다. 즉 아무도 전쟁에는 가고 싶지 않았고 전쟁의 실상을 알아야 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경향신문

그렇다면 대체 전쟁은 누가 시작한 것일까? 그렇게 쉽게 정부의 결정으로 가능한 것일까?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없는 것일까? 인간 개개인이 한번 전쟁에 휩싸이면 얼마나 빠져나오기가 힘든지, 그야말로 동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다. 그런 상황을 시인 와타나베 하쿠센은 “전쟁이 복도 끝에 서 있었다”고 표현했다.

얼마전 한 일본인 친구가 <이 세상의 한구석에>란 전쟁 애니메이션을 권했다. 가끔 참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일본을 피해자로 그린 작품을 권할 수가 있는 걸까? 그런 무모함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일본인들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해자라고도 생각한다. 양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이 세상의 한구석에>처럼 말이다. 그래서 일본은 참 복잡하다. 한·일 갈등이 얼마나 갈지 사실 두렵다. 어리석은 선택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8월이다.

김민정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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