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있다.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의 전시 중단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전시장은 닫힌 상태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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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의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출품된 지 사흘 만에 전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소녀상이 출품된 전시는 '표현의 부자유, 그 후'를 주제로,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은 기획전이었다. 하지만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소녀상 전시는)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는 망언을 내뱉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예술제에 대한 보조금 교부 여부에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밝힌 뒤 전시장 입구가 5m 높이 가벽으로 막힌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8년 전 평화와 인권을 위해 세워져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소녀상('평화의 비') 설치에 후지무라 오사무 당시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에 건립중지를 요청해왔으나 건립이 강행된 것은 정말 유감"이라며 바로 반발했다. 하지만 이후 국내 곳곳에 소녀상이 설치됐다.
한국을 제외하고 소녀상이 가장 많이 세워진 국가는 미국이다.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을 시작으로, 미시간 사우스필드 한인문화회관, 조지아 브룩헤이븐 블랙번 메인 공원, 뉴욕한인회관 등 네 곳이며 워싱턴 설치를 재추진 중이다. 캐나다 토론토, 호주 시드니, 독일 비젠트 등에도 소녀상이 세워졌다. 아시아 국가에선 중국 상하이 사범대학 앞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요구하기도
일본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016년 9월 1일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화해ㆍ치유재단)에 10억 엔 입금을 완료한 것을 언급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포함해 (지난해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노력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상 중에 소녀상과 관련된 부분은 없다"고 했다.
일본은 2017년 1월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의 뜻으로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본국으로 일시 소환하는 강수를 뒀으며 통화스와프 협정 재체결 협상 중단을 발표했다.
해외 소녀상 설치에 소송도
2013년 해외 최초로 미국 글렌데일에 소녀상이 생기자, 일본 측의 항의로 청문회가 열렸으며 일본 극우단체는 글렌데일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소송까지 걸었으나, 패소했다. 2017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소녀상이 세워지자 일본 오사카시가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를 향해 '자매도시 관계를 끊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의 여성예술가 전시관 게독에 전시된 소녀상.[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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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는 전시관 '게독'이 소녀상을 지난 2일부터 전시하자 독일 주재 일본대사관은 전시 주최 측에 공문을 보내 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지난 6월 같은 작품이 전시된 독일 도르트문트의 미술관에는 독일 주재 일본 총영사가 찾아가 철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독일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전시됐다가 일본 측의 요구로 철거된 "작은 소녀상"과 같은 형태의 소녀상이 베를린 여성 예술인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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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압박으로 소녀상이 실제 철거된 사례도 있다. 필리핀에서는 소녀상 개막식 이틀 뒤 소녀상이 철거됐는데, 일본 영사관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독일 소도시 라벤스브뤼크의 나치 수용소 기념관에서 2017년 4월부터 전시한 10㎝에 불과한 소형 소녀상은 2018년 1월 주독 일본대사관 측의 항의로 철거됐다.
‘최종적·불가역적'을 소녀상과 연결지어 해석
최근 일본이 독일 전시회 주최 측에 보낸 공문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이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도 다 끝났다는 주장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 담긴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으로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추모사업이나 기념사업, 외국에 소녀상을 건립하는 문제를 포함해 해외 전파와 확산, 문제 제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대표는 6일 전화통화에서 "일본 정부는 성노예 범죄를 부정하고 무엇보다 미성년인 어린아이들을 끌고 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화의 소녀상은 어린아이들부터 연행해 간 것을 드러낸 것이고, 소녀상은 피해 역사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고 일본 정부와 싸우는 것인지를 담은 것이라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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