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장관이 ‘우려’를 표명했다는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일본 외무성 당국자)
“(한미일) 3국이 만났다는 사실은 해법 또는 적어도 해결책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
지난 2일 오후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 대해 당사국 관계자들이 내놓은 발언이다. 세 나라 입장에서는 분명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한국이 일본이 한국을 수출 절차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미국도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의 우려를 표명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미국은 3국 외교장관회담이 성사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미국은 중재나 조정에 관심이 없다”며 적극적인 역할에는 선을 그었다.
한·미·일 3국의 이같은 입장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강행 이후 ‘경제 전면전’에 돌입한 한일 관계가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일 방콕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비우호적인 보복조치를 취한 상황에서 앞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냉각기가 분명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일본 측이 회담에서 미국이 우려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우려 표명이 없었다고 하면 이상한 일 아니겠나”며 “미국으로서는 중재를 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발표 이후 어려워진 상황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도통신은 3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한일 양국이 협력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고는 했지만, 구체적인 중개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은 회담 결과를 전하는 보도자료에서도 북핵 대응에 방점을 찍었다. 외무성은 “한미일 3국은 북한 관련 정세에 대한 최근의 움직임을 포함하여 의견을 교환했으며, 향후 계속해서 긴밀하게 연계해 나갈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근의 한일 갈등과 관련해서는 “한일 관계와 지역정세에 대해서도 논의를 나눴다”고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당초 통역 없이 장관들끼리만 만날 것으로 알려진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은 담당 국장 한 명씩 배석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세 명 장관들이 모여 회담하는 형식을 원했지만 일본측 요청으로 당국자 한 명이 배석하게 됐다”고 전했다. 미국이 제한된 회담 시간(30여분) 동안 한일 양측으로부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세 장관만의 회담을 제안했으나, 일본이 부담스러워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역할에 나설 지는 미지수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끝난 뒤 미국 기자들에게 한 브리핑에서 회담 개최를 평가하면서도 “미국은 중재나 조정에 관심이 없다. 그 사실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미국의소리(VOA)에 “한국과 일본은 그들의 양국관계가 악화되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고, 각자 이를 개선시킬 책임을 져야한다”며 “최근 몇 개월간 양자 신뢰를 손상시킨 정치적 결정들에 대해 약간의 자아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 모두 관계 악화에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하루 앞둔 1일 밤까지도 “부산하게 움직였다”고 전했다. 미국이 한일 갈등 완화를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강 장관은 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주최 갈라 만찬에 참석한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와 20분 가량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이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처음 열린 외교장관회담에서 “상당한 간극”만 확인하고 돌아선 날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일정상 이유로 만찬에 불참하면서, 한·미·일 외교장관이 자연스럽게 조우하는 자리는 연출되지 않았다. 다만 강 장관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만찬장 입구에 서서 2-3분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강행으로 더욱 격앙된 한일 관계는 당분간 냉각기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해 외교적 협의 공간이 좁아진 건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일본이) 비우호적인 보복조치를 취한 상황에서 이미 어려웠던 상황이 더 어려워졌고 냉각기가 분명히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일본의 일련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일본이 처음에는 과거사(강제징용 판결)에 갖다 붙였는데 이제는 기술적인 문제로 한정시켰다. 그 기술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 문제를 축소하려는 게 일본 쪽 전략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에 나온다면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트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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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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