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독립운동가 이규채를 손자의 스승으로 모신 계초 방응모 일화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가 그의 손자인 방일영(方一榮)의 공부를 위해 나를 초청해 함께 살았다."

독립운동가 이규채 선생의 연보 가운데 1944년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이 이규채를 빈객(賓客)으로 모셨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규채는 1940년 출감한 뒤 옥고의 후유증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방응모는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귀국 환영회에서 이규채와 함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방응모는 이규채뿐 아니라 만해 한용운과 벽초 홍명희, 조만식과 문일평 등 독립운동가와 지식인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한용운은 1927년 신간회 중앙위원 겸 경성지회장을 맡았을 때 역시 신간회 중앙위원 겸 평양지회장인 조만식의 소개로 방응모와 친분을 나누게 됐다. 방응모가 1933년 만해 한용운을 위해 성북동 뒷산 자락에 마련해준 집이 지금도 남아 있는 '심우장(尋牛莊)'이다. 만해 한용운은 이곳에서 소설 '흑풍'을 집필해서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홍명희도 소설 '임꺽정(林巨正)'을 1928년부터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장남 홍기문은 학예부장·논설위원을 거치며 폐간 때까지 재직했다. 홍기문은 "조선일보가 폐간된 뒤 도서관에 틀어박혀 '조선왕조실록'을 3년이나 훑어보았는데, 이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방응모 사장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