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판화가 에셔의 작품 ‘그리는 손’에선 어떤 손이 반대편 손을 그리는지 알 수 없다. 그 모호함이 주는 의미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경계를 미묘하게 비틀라는 암시일지 모른다. 결국 각자 알아서 ‘해석’해야 할 뿐이다.
‘나’가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사실은 ‘상대방’의 행동이나 감정, 태도에 영향받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출근길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자신과 마주할 때 ‘나의 의지’에 기인한 결과라고 믿지만, 저자는 이것조차 ‘전염’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길을 걷다가 언뜻 커피잔 상표를 봤거나 조간신문을 살 때 어느 여성의 옷에서 스타벅스 커피 맡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
커피 구매 등 사소한 행위뿐 아니라 결혼이나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사회전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전염은 우리가 피하려고 한다고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주식 시장 분위기를 보면 탐욕에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교내 총기 사건을 통해 폭력이 전파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의 욕구와 행복은 물론이고 아량, 용기, 직업윤리 같은 본인의 감각조차 감기처럼 타인에게 전염될 수 있다.
예일대학과 국방부 연구자들은 이 학문을 이해하고 알리기 위해 수백만의 피실험자를 조사한 바 있다. 사회전염은 기억에서 분위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요소에 은밀하게 영향을 주지만 우리는 종종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2009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팰로앨토 마을에서 한 명문 고등학교 학생이 기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몇 주 후 다른 학생이 또 기차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5명이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이를 ‘사회전염’으로 명명했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 현상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고발해 처형한 세일럼의 마녀재판은 집단 광기가 불러온 사회전염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 사회는 급변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망상과 불안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사회전염의 촉매제로 작용한 셈이다.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이나 섭식장애 전염 등 부정적 사회전염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 전염은 영영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염은 전염으로 맞서는 것이다.
팰로앨토 마을엔 몇 년 후 다시 연쇄 자살 사건이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되레 죽은 학생들의 모교에서 뮤지컬 공연을 열어 함께 노래하며 서로를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라는 전염으로 극복했다.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함께 치유모임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적 방법들을 동원해 서로 전염시키고, 어느 마을의 폭력을 막기 위해 사람들 스스로 단속단이 되어 서로 돕기도 한다. 구글 직원인 와엘 고님의 용기가 전염돼 이집트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기도 하고 인기 드라마 방영 이후에 멕시코의 문맹률이 낮아진 사례도 있다. 티끌의 긍정이 태산의 변화를 이끈 결과들이다.
긍정적 전염의 파장은 기대 이상이다. 병동의 우애 전염도를 관찰한 결과 우애 점수가 높을수록 환자들은 불필요한 응급실 이동을 줄였다. 우애 점수가 높은 관리팀이 환자를 돌볼 경우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관리자들의 정서 상태를 닮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사회전염은 허리케인처럼 불가피하고 종잡을 수 없지만, 공동체가 그 속에서 의연히 버팀목이 돼야 한다”며 “특히 행복의 사회전염은 우울증의 전파를 막아줄 뿐 아니라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 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펴냄. 278쪽/1만6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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