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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목멱칼럼]軍에 대한 불신은 누구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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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노크 귀순’으로 군의 경계태세에 허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는 초병이 한밤에 근무지를 이탈하고, 상관이 부하에게 거짓 자수를 종용하는 한심한 일이 발생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군의 경계실패와 기강 해이를 질타하면서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삼척 지역 경계를 책임진 8군단장이 해임되고, 거짓 자수를 유도한 지휘관도 직위 해제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허리 숙여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은 막을 수 없었다.

이데일리

정부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얼마나 실질적인 조치가 나올지는 지켜봐야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이번 사태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없이 올바른 해결책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삼척과 평택사건을 크게 3개의 문제영역으로 분석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 번째 문제는 경계실패와 기강 해이와 같은 현실적 한계다. 삼척에서 해안감시 레이더와 영상감시 시스템에 북한 목선이 포착됐으나 이를 식별하지 못했다. 평택에서는 영내 초병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물 샐 틈 없는’ 경계와 같은 완벽한 보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교육훈련의 강화를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함’보다 ‘합리적 충분성(reasonable sufficiency)’의 틀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예하 부대에서 군 수뇌부로 신속한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스템 차원에서 보면 매뉴얼의 문제이며 이의 개선과 점검으로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을 축소·은폐하고자 하는 군의 관행이 작동하고 있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바로 세 번째 문제영역인 ‘보고의 진실성’과 연결된다.

사실 삼척의 북한 목선 귀순사건은 제대로 보고만 했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의 어설픈 브리핑이 사건을 키웠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드러날 사실을 애매한 표현 속에 감춘 것이다. 단순한 경계실패 사건이 정부 주도의 축소·은폐사건으로 커진 이유다. 처음 브리핑에서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한 것처럼 언급했으나 사실상 자발적 귀순이었다. 목선이 너무 작아 탐지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감시 장치에 포착된 것을 북한 목선으로 식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경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지만, 보름 후 정부합동조사결과에서는 ‘경계실패’를 인정했다. 서둘러 무마하려는 마음에 애매한 핑계로 일관하다 정치적 논쟁거리로 키운 것이다. 평택 사건도 이런 관행 탓에 상부에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급기야 부하에게 거짓 자수를 종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결국 사태의 핵심에는 ‘보고의 진실성’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는 합리적 조치만 취한다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세 번째 문제인 ‘솔직하지 않음’의 관행은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국방부는 “축소·은폐의 의도는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경계실패가 아니라고 말한 것 자체가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그럴 의도가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솔직하지 않았다. 용어의 부적절성이 문제가 아니라 ‘알면서 딴소리했다’는 것이 사건의 실체일지 모른다.

어떻게 변명하든 북한 목선 사건에서 국방부나 합참이 보여준 모습은 솔직하지도 정확하지도 못했다. 군(軍)에 대한 불신은 바로 이러한 솔직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꼭 이번 사건만도, 이번 정부만의 일도 아니다. 지금 국방부 앞을 메우고 있는 수많은 의혹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군이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이나 이해당사자들이 신뢰할 만한 언어와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불신하는 것이다.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 군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탄식한다. 물론 국민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탓하기 전에 군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선생은 학생을 탓하지 않고, 통치자는 국민을 원망하지 않는다. 훌륭한 지휘관이 부하를 탓하지 않듯이, 군도 국민을 탓해서는 안 된다. 불신의 원인제공자는 바로 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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