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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4] 영국 펍(pub)에서 종업원 기다렸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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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펍(pub·사진)에서는 종업원이 테이블로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 손님이 바(bar)로 가서 종업원에게 주문하고 돈을 먼저 낸 뒤 마실 걸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거나 바 근처에서 서서 마신다. 이걸 모르고 테이블에 앉아 마냥 기다렸다간 결국 영업 끝나는 시간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주문받으러 다니는 종업원을 줄이겠다는 이유보다는 손님들이 바 근처로 모여들게 하겠다는 뜻이 깃든 전통이다. 줄 서기가 국가 운동(national sport)이라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서도 줄을 선다는 영국인이 유일하게 줄을 서지 않는 곳이 펍 바이다. 바 근처에 여기저기 서 있으면 웨이터가 귀신같이 누가 먼저 왔는지 알고 순서대로 주문받는다. 종업원의 간택을 기다리는 동안 생면부지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 담소를 나누면 된다. 내가 말을 안 걸면 그쪽에서 말을 걸어 온다. 바 근처는 치외법권 지역이라 누구에게 말을 걸어도 절대 실례가 되지 않는다. 옆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오히려 실례가 된다. 그래서 청춘 남녀가 서로 첫 만남을 시작하는 곳이다. 영국 펍은 단순히 술을 사서 마시는 곳이라기보다 일종의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성인이 되면 여기서 친구를 만나고, 이성을 만나고, 자식 낳으면 일요일에 데리고 와서 정원에서 동네 애들과 같이 놀게 하는, 어찌 보면 영국인의 심장 같은 곳이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숫기가 없어 먼저 말을 잘 걸지 않는다. 이런 얘기가 있다. 유럽 남자 두 명이 무인도에 떨어졌다. 10년 뒤에 가 보니 이탈리아인은 각각 하나, 그리고 같이 하나 해서 정당 3개를 만들어 정치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남자 두 명은 급한 나머지 연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국 남자 둘은 그때까지 말을 안 하고 있었다. 중간에 둘을 소개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이다. 이런 영국인이 서로 사귀고 함께 살아가도록 펍을 동네마다 만들어 놓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기 마실 걸 직접 사서 마시는 혼술, 혼밥을 하되 모여서 같이 살아가라는 장소가 펍이다. 펍이 있어 프라이버시를 목숨같이 여기는 영국인들도 외롭지 않다.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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