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신질환과 범행 관련 있다' 의견 제시
서울고법 |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법원이 정신질환을 겪는 강력사범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거나 치료구금 결정을 내리는 등 피고인과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법절차를 운용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21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여·25)씨의 항소심에서 전문심리위원을 지정, 이 씨를 면담하도록 한 후 이날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 씨는 어머니가 샤워하는 동안 집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이 씨는 채무에 대해 어머니와 얘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자 어머니를 살해하고 본인도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으나, 막상 자살까지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이 씨 사건의 범행 동기나 전후 상황 등에 석연찮은 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최종 판단에 앞서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다.
한국법심리학회장인 조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이 씨를 면담하도록 한 뒤 이날 조 교수로부터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조 교수는 "피고인을 지난달 24일 심층 면담하면서 피고인의 정서적인 불안정함이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피고인이 정신과 진료 때 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받았고, 약물치료도 일시적으로 받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중단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피고인이 채무에 관해 얘기하자 피해자가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보며 피고인도 같은 감정의 큰 진폭을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은 전에도 자살 충동의 사고를 여러 번 경험했는데 이 사건 직전에 더는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극단적인 생각으로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범행 도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도 피고인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생각된다"며 "멍한 상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는데 피고인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정신상태, 즉 일종의 해리 증상 비슷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변호인이 "사건 당시 피고인의 판단력이 현저히 결여된 상태였느냐"고 묻자 "피고인이 범행 전후에 '가슴은 차 있고, 머리는 텅 비어있고, 붕 떠 있고' 이런 느낌을 얘기했는데 이는 해리 증상을 묘사하는 것과 상당히 부합한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날 결심에서 이 씨에 대해 원심 구형량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원심이 선고한 징역 22년이 중형으로 보이지만, 중형인지 아닌지는 범죄 내용과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 내내 흐느끼던 이 씨는 최후 변론에서 "정말 잘못했다"며 반성의 눈물을 보였다.
이 씨는 "엄마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을 매일 기억하며 많이 힘들어하고 반성하고 후회할 것"이라며 "평생을 반성하고 속죄하며 살아가겠다"고 울먹였다.
형사1부는 치료적 사법 내지 회복적 사법을 시도하기 위한 사법적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19일에는 중증 치매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한 60대 남성에게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하고 치료구금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구치소에서 피고인의 상태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치료감호나 입원 치료를 받는 게 처벌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나눠서 져야 한다는 점도 고려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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