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법률자문·상상력 동원 / 용 그리려다 뱀도 제대로 못그려” / 공소장 추측성 진술 원색비난 / 고영한·박병대도 나란히 재판 / “檢서 권한 남용 단정해” 주장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양 전 대법원장은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검찰 수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지난 2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기소된 이후 107일 만에 열린 첫 공식 재판이다. 수의 대신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이 말한 공소사실의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정말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이고, 모든 것을 부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는 용을 그리려다가 뱀도 제대로 못 그린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날 열린 첫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고·박 전 대법관도 법정에 섰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피고인석에 나란히 선 것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이다. 약 6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첫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지루한 듯 재판 도중 몸을 뒤로 기대고, 박 전 대법관은 물론 담당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반면 고·박 전 대법관은 긴장한 듯 굳은 표정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공소장을 소설에 비유하며 약 25분에 걸쳐 검찰 수사를 강력 비판했다. 그는 발언기회를 얻은 뒤 “80명이 넘는 검사가 8개월이 넘는 수사 끝에 공소장을 창작했다”며 “법률가가 쓴 문서가 아닌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자문을 받아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폄훼했다. 이어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며 “검찰이 재판거래를 한 것처럼 모든 것을 왜곡하고 견강부회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1회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검찰 수사도 사찰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을 보면 통상적인 수사가 아닌 제 취임 첫날부터 퇴임한 마지막 날까지 모든 직무행위를 뒤져 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나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였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며 “특정 인물을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수사”라고 항변했다. 그는 검찰 공소장에 ‘∼등’이란 표현이 많아 공소사실 등이 특정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고·박 전 대법관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난했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 공소장은 알맹이, 실체보다는 부적절한 보고서 작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며 “재판거래니 사법농단이니 말 잔치만 무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모든 과대포장과 견강부회를 일일이 꼬집어 말할 생각은 없지만 진상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도 “재판을 통해 잘못 알려진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재판부가)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신중하고 냉철하게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5일까지 검찰 측 서류증거 조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증인신문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 211명 중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26명을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
염유섭·유지혜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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