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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녹슨 車, 벨트는 대충…또다른 `송도 승합차` 지금도 운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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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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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한 명, 유치원생 두 명을 키우는 다둥이 아빠 전 모씨(39)는 최근 어린이 통학차량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아이들을 수영학원에 보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이 학원에서 쓰는 노란색 승합차는 11인승이며 13년이나 됐다. 아이를 태우면서 얼핏 볼 때마다 좌석엔 안전벨트 클립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전씨는 "어린이집은 최근 들어 선생님이 같이 승하차해줘서 좀 나아졌지만, 학원은 차가 붐비면 아이들이 서서 타거나 아이들끼리 무릎 위에 앉아 타는 일도 다반사"라며 "아이가 셋이라 특히 더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 15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에서 사설 축구클럽 통학차인 스타렉스 승합차와 카니발 승합차가 충돌해 스타렉스 승합차에 타고 있던 초등학생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어린이 통학차량이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나 유아를 태울 때 승하차를 돕는 성인 보호자 탑승을 의무화한 '세림이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어 더 촘촘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이번 축구클럽 통학차 사고는 현행 제도가 어린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처음 사건 발생 당시에는 숨진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 부모 일동은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축구클럽에 축구 한다고 차량에 태워 보낸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는 글을 올리며 "허리와 배에 안전벨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아이들이 탑승하고 있던 차량 안전벨트는 3점식 벨트가 아닌 2점식이었다. 3점식 벨트는 어깨를 가로질러 허리까지 잡아주는 방식으로 급정거나 방향 전환 시 유아 몸이 이탈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지만 2점식은 배만 감싸준다. 승용차 대부분은 3점식 벨트이지만 학원이나 유치원 버스 등 아이들이 많이 타는 승합차는 2점식인 경우가 대다수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어린이통학버스 안전벨트는 '어린이의 신체구조에 적합하게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길이가 조절되고 아이 몸에 맞는다면 성인용 2점식, 3점식 벨트를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경찰청은 2008년 발표한 '좌석안전띠 착용률 제고를 위한 정책 개선 연구 보고서'에서 "2점식 벨트에서 3점식 벨트로 바꿨을 때 정면충돌 시 유의미하게 탑승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높았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며 "3점식 벨트 착용은 2점식 벨트와 비교했을 때 사망자 수를 15%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사고 차량에는 머리보호대(헤드레스트) 또한 없었다. 머리보호대는 추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목과 머리를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안전장치다. 2점식 벨트와 머리보호대가 없는 낮은 등받이는 전후방 충돌 사고 때 어린이의 경추를 보호할 수 없고 목이 꺾일 위험이 있다.

어린이 통학차량 사고가 끊이지 않자 최근 몇 년간 정부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13년 충북 청주에서 3세 김세림 양이 어린이집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세림이법은 △9인 이상이 탑승한 어린이 통학버스 의무 신고제 △안전띠 착용과 승하차 확인 △보호자 동승 필수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자와 운전자 교육 필수를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발생한 축구클럽은 세림이법을 적용받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해당 축구클럽은 개업 당시 담당 구청인 연수구에 '자유업종'인 서비스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기 때문에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자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정부 규제에도 노후 차량이 버젓이 어린이통학버스로 사용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 1월부터 개정된 국토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제도가 시행되면서 차령 9년(정비 시 2년 연장 가능)을 초과한 어린이 통학버스는 유상 운송이 금지됐다. 그러나 어린이 통학버스 차주가 승객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무상 운송으로 분류돼 사실상 노후 차 교체 의무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사고 피해 아동 부모 A씨에 따르면 사고 차량은 2007년 출시된 것으로 11년이 넘은 노후 차량이었다.

강주일 한국어린이안전재단 전북지부 대표는 "아이들 통학버스는 어린이 안전 보장이 빠진 채로 총체적 난국"이라며 "어린이 통학버스에는 어린이에게 맞는 안전벨트와 장치를 설치하도록 하는 법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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