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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74]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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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1724~1806)는 가업을 특이하게 계승했다. 10대까지는 가죽 직공이던 아버지를 따라 무두질을 했지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동물 해부에 몰두한 결과 최고의 동물 전문 화가가 됐던 것이다. 그의 그림 덕분에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캥거루를 보게 되었다지만 스텁스의 이름을 드높인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이 ‘휘슬재킷’의 초상화다.

조선일보

조지 스텁스, 휘슬재킷, 1762년, 캔버스에 유채, 292×246.4㎝,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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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평생 자기 초상화 한 점을 갖기 힘들던 시절에 실물 크기의 초상화를 보유한 이 말의 정체는 무엇인가. 당시 '휘슬재킷'의 주인은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정치인이자 당대 최고의 부자이며, 정치를 빼고는 경마에만 열중했던 로킹엄 후작이었다. '휘슬재킷'은 유럽에서도 손꼽히게 큰 그의 저택 마당에 풀어 키우던 200여 마리의 말 중 하나로, 현재 경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러브레드종(種)의 조상인 고돌핀 아라비안의 손자다. 하지만 '휘슬재킷'은 화려한 족보에 비해 경주마로서나 종마로서 기록이 특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토록 기념비적인 초상화의 주인공이 된 건, 그림을 보건대 그의 우아한 외모와 자유분방하고도 고귀한 성격 덕분이었을 것이다.

뒤 발목에 하얀 띠를 두른 ‘휘슬재킷’은 기름진 갈색 몸통에 부드러운 크림색 갈기를 날리며, 앞발을 들어 달리다 말고 우리를 쳐다본다. 주인도, 마구도, 안장도 없이, 온 세상에 홀로 남은 듯 무한한 배경에 선 ‘휘슬재킷’은 아름답고 자유롭고 고고하지 않은가. 스텁스는 이전까지 왕과 귀족의 권세를 드높이기 위한 받침대처럼 존재했던 흔한 말 그림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한 마리의 말, ‘휘슬재킷’을 보여준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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