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스텁스, 휘슬재킷, 1762년, 캔버스에 유채, 292×246.4㎝,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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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평생 자기 초상화 한 점을 갖기 힘들던 시절에 실물 크기의 초상화를 보유한 이 말의 정체는 무엇인가. 당시 '휘슬재킷'의 주인은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정치인이자 당대 최고의 부자이며, 정치를 빼고는 경마에만 열중했던 로킹엄 후작이었다. '휘슬재킷'은 유럽에서도 손꼽히게 큰 그의 저택 마당에 풀어 키우던 200여 마리의 말 중 하나로, 현재 경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러브레드종(種)의 조상인 고돌핀 아라비안의 손자다. 하지만 '휘슬재킷'은 화려한 족보에 비해 경주마로서나 종마로서 기록이 특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토록 기념비적인 초상화의 주인공이 된 건, 그림을 보건대 그의 우아한 외모와 자유분방하고도 고귀한 성격 덕분이었을 것이다.
뒤 발목에 하얀 띠를 두른 ‘휘슬재킷’은 기름진 갈색 몸통에 부드러운 크림색 갈기를 날리며, 앞발을 들어 달리다 말고 우리를 쳐다본다. 주인도, 마구도, 안장도 없이, 온 세상에 홀로 남은 듯 무한한 배경에 선 ‘휘슬재킷’은 아름답고 자유롭고 고고하지 않은가. 스텁스는 이전까지 왕과 귀족의 권세를 드높이기 위한 받침대처럼 존재했던 흔한 말 그림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한 마리의 말, ‘휘슬재킷’을 보여준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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