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2 (일)

[유레카] 괴테와 실러 / 고명섭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괴테(1749~1832)와 실러(1759~1805)는 세계문학사에 다시 보기 어려운 우정을 나눈 사람들이다. 열 살 차이의 두 사람은 질풍노도의 낭만주의를 거쳐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20대의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운 실러는 21살 때 희곡 <군도>를 무대에 올려 독일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두 사람의 우정은 1794년 편지 교환을 시작하며 깊어지기 시작해 5년 뒤에는 실러가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이사함으로써 떼어낼 수 없는 것이 됐다. 우정은 두 사람에게 문학적 창조성의 발효제였다. 괴테는 실러를 만나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탈고했고 실러는 괴테와 모든 것을 상의하며 희곡 <발렌슈타인>을 완성했다.

괴테와 실러는 각자 쓴 시를 한데 묶어 공동으로 펴내기도 했다. 풍자시집 <크세니엔>이 그것이다. 에커만이 기록한 <괴테와의 대화>에서 괴테는 <크세니엔>에 실린 실러의 시들이 예리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과 달리 자신의 시는 순진하고 평범하다고 고백한다. 괴테는 실러와 함께한 시간을 총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두 사람은 성격이 아주 달랐지만 방향은 일치했다.” 괴테는 실러의 성품도 전한다. “실러는 일체의 공허한 존경이나 시시한 우상화를 한사코 싫어했다.” 괴테는 죽기 직전 실러가 보낸 편지를 에커만에게 내보이며 이런 말도 한다. “이 편지야말로 내가 실러에게서 받은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이다.” 괴테가 실러의 그 편지를 받은 것은 1805년 4월14일이었다. 그날로부터 한 달이 안 돼 실러는 급성 폐렴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괴테는 “내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괴테가 실러의 죽음을 애도하며 토해낸 말을 한국 정치사의 한 고비에서도 들을 수 있다. 2009년 5월23일 전임 대통령 노무현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김대중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에 이어 민주정부를 이끈 후배 정치인이 강퍅한 정권의 괴롭힘 끝에 죽음을 선택했을 때, 김대중은 실러를 잃은 괴테의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김대중도 석 달 뒤 노무현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나란히 보낸 10년은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은 기념비적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