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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조용헌 살롱] [1194] 당진의 함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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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한량(閑良)이 되려면 300석 재산은 되어야 한다.”

어렸을 때 고향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1년에 쌀 300가마 정도의 수입이 있어야 일에 시달리지 않고, 남들과 아웅다웅 다투지 않고 한가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300석 수입은 안 되지만 어찌 하다 보니 한량이 되었다. 신문사에서 주는 원고료와 책 팔아서 받는 인세, 강연료 받아서 먹고산다. 만년필과 노트북만 가지고 다니면 굶어 죽지는 않는 인생이다. 굶어 죽으면 또 어떤가!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글 쓰면 녹이 그 안에 있다는 뜻)이라. 증조부 묘를 문필봉 보이는 데 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량의 일과 중에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다른 사람 집 보러 다니는 일이다. 그 사람의 집을 보면 재미있다. 집이 위치한 풍수적 위치와 집의 내부 구조가 모두 다르다. 집을 보면 집주인의 성격과 팔자가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충남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大田里)에 아는 독자분(서정우·徐正宇·61)이 10여년 전쯤부터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데 마당에 꽃이 만발했다고 한번 놀러오라는 전화가 왔다. 신례원역에서 내려 이 집에 가보니까 글자 그대로 밭 전(田), 동산 원(園)에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집 뒤쪽은 야트막한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간중간에 논밭이 자리 잡고 있는 충청도의 전형적인 산세였다.

충청도는 산세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이불 덮어 놓은 것처럼’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말씨도 순하고 느린 걸까. ‘됐시유~’ ‘알았시유~’ ‘냅~둬유’는 이렇게 평화로운 지형에서 나온 충청도 3대 간접화법이 아닐까. 집 안의 거실에서 밖을 바라보니 눈에 거슬리는 게 없다. 머금을 함(含)자를 써서 함덕당(含德堂)이라고 당호를 지었다. 유순하면서도 사람을 긴장시키지 않고 포용하는 기운이 집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암반과 바위 봉우리로 둘러싸인 골기(骨氣) 중심의 터를 좋아했던 나의 취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육기(肉氣)의 집터였다. 이렇게 편안한 터는 골기를 보강하는 비보(裨補)가 필요하다. 집 앞마당에다가 120㎝ 정도 높이의 자그마한 돌기둥을 세워 놓았다. 일종의 화표석(華表石)이다. 잡기(雜氣)를 막아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화표석 더 앞으로는 소금을 가득 채운 무쇠솥 3개를 땅 밑에다가 묻어 놓았다고 한다. 솥단지에 소금을 넣고 묻어두는 비보 방법은 오래된 고법에 해당한다. 알고 보니 불교계의 풍수 고단자인 혜담(69) 스님이 집주인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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