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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아빠가 아이랑 출근, 아이 아프면 조퇴…세종에 ‘라떼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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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세종 라테파파 탄생기

세종엔 양육 적극 참여 아빠 많아

날마다 등원시키고 저녁에도 돌봐

주말엔 공원으로 요리교실로…

아빠 육아 참여 늘어나면

노동시장 성평등 촉진 효과

아이 두뇌·정서 발달에도 긍정적

세종 출산율 전국에서 1위

라테파파 전국 확산시키려면

노동시간 단축·워라밸 정착 중요

아빠 휴직할당제 등 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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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테파파’는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한 손엔 유아차(유모차)를 끌며 다른 아빠들과 ‘육아 수다’를 떤다는 그 아빠들 말이다. 그런데 세종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아침 출근시간, 어린이집에는 엄마들보다 아빠들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저녁 시간 동네 놀이터에서는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뛰놀고 있었다. 세종 라테파파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지난 11일 세종시 종합복지센터 3층 행복맘터 조리실습실.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두른 아빠와 아이들이 ‘커리두부스테이크’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스테이크는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한입 크기로 야채와 닭고기로 만들게요. 야채를 잘게 자르는데요. 양파는 겉껍질을 벗기면 얇은 막이 나와요. 이것도 없애고요. 파프리카는 네 등분 한 뒤에 안쪽에서 썰면 쉬워요.” 푸드 컨설턴트 윤명현씨가 설명하자 아빠와 아이들이 메모를 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수업은 세종시가 주최한 ‘아빠와 함께하는 신나는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의 첫번째 수업(총 2회)이다. 아빠와 아이들은 배운 대로 요리에 나섰다. 아빠가 야채를 씻는 동안 아이가 야채볼을 준비했다. 함께 손을 겹치게 잡고는 야채를 썰었다. 아이가 두부를 으깨 반죽하고 작은 모양의 동그랑땡을 빚으면 아빠가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구웠다. 노릇노릇한 냄새가 조리실습실을 가득 채울 즈음, 아이들은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며 아빠와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석한 강대곤(36)씨는 세종시청 누리집에서 프로그램 안내를 보고 신청했다고 했다. 16가족을 선착순으로 뽑았는데 51가족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아홉살, 다섯살 두 아이를 둔 강씨는 주말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는지 시청 누리집 등을 자주 살핀다. 지난번에는 조치원에서 열린 ‘아빠와 함께하는 역사교실’에 참여했다. 두달간 토요일마다 우리나라 역사를 아이와 함께 공부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주말이면 아이들과 야구, 축구를 하러 다닌다. 몸풀기 체조를 같이 하고 공도 주고받으면서 논다.

강씨는 세종에서 전혀 ‘특별한’ 아빠가 아니다. 세종에서는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아침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데려오는 아빠들, 퇴근 뒤나 주말에 동네 놀이터와 도서관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아차를 끌고 다니며 다른 아빠들과 육아에 관한 수다를 떤다는 ‘라테파파’가 세종에선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 목소리 들으며 일하는 아빠들

지난 14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5동 1층에 있는 직장어린이집인 이든샘어린이집. 아이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엄마와 함께 오는 아이들보다 아빠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아이의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를 꼭 잡은 아빠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아빠들은 부모대기실에서 아이가 골라 온 책을 읽어 준다.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챙겨 먹지 못한 약을 먹이는 아빠도 있다. 박성경 이든샘어린이집 원장은 “맞벌이 부부가 95% 정도 되는데, 아빠랑 등하원하는 아이들이 70% 정도”라고 말했다. 이 어린이집에서 마련한 1박2일 동안 아빠랑만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행사에도 참여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인 곽병배(41)씨는 2년 전부터 일곱살 아들과 날마다 함께 출근하고 있다. 대전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아내는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아침에 아이를 깨워서 밥을 먹이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서너살 때는 엄마가 출근하면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빠 손을 잡고 엄마를 배웅할 정도로 의젓해졌다. 가끔 아이가 열이 오르면 어린이집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면 잠시 짬을 내서 내려와 상태를 보고는 해열제를 먹이거나 한시간 외출을 끊어서 병원에 데리고 간다. 업무 중에 아이 목소리를 듣는 반가운 순간도 있다. 사무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어린이집 아이들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들 목소리는 귀에 와서 꼭 박힌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들의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교육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세종 도램마을아파트에 있는 힐스누리어린이집에서는 휴대전화 앱으로 ‘알림장’을 보낸다. 이 어린이집 관계자는 “선생님이 이 앱에 아이의 하루를 적으면 부모가 댓글을 다는데 아빠들의 댓글도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등원할 때나 하원할 때는 선생님과 만나 아이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눈다고 한다. 아이의 일상과 성장에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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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라테파파 어떻게 가능한가

① 워라밸 가능한 노동조건

세종에서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가능한 이유는 뭘까. 우선 공공기관이 많고 ‘주 52시간 노동’ 확산으로 정시퇴근이 보편적이라는 점, 세종시의 특수성 때문에 직장과 집 사이 거리가 짧다는 것 등을 주요하게 꼽을 수 있다. 적절한 노동시간과 짧은 통근시간 때문에 그만큼 육아를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노동시간뿐 아니라 통근시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노동자 1인의 연평균 근로시간(2017년)은 연간 2024시간으로 오이시디 36개국의 평균(연간 1746시간)에 견줘 278시간이나 길다. 우리나라의 1일 평균 통근시간(2015년 기준)은 61.8분으로 오이시디 국가 평균(28분)의 2배가 넘는다. 2위인 일본(40분)과도 큰 차이가 난다. 게다가 2010년(58.4분)에 견줘 3.4분이나 늘어났다.

세종시는 정부 주요 부처가 위치해 있는 행정도시다. 공무원과 공기업 등이 많아 전반적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고 정시퇴근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계획도시라 일터와 집의 거리도 짧은 편이다. 새 아파트가 많고 임대비용이 저렴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는 게 가능하다. 조치원이나 대전으로 출퇴근하더라도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다.

야근이 필요한 날에는 일단 퇴근한 뒤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아빠들도 있다. 아이 다섯명을 키우는 공무원 강동윤(43)씨는 야근을 해야 하면 오후 6시께 퇴근해 차로 10분 거리인 집에서 가족과 저녁식사를 한 뒤 저녁 8시께 사무실로 돌아간다. 강씨는 “상사랑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지면서 다른 직원들도 저녁을 집에서 먹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6살, 4살 딸과 아들을 키우는 공무원 오준봉(41)씨는 세종에서는 윗사람 눈치를 보며 일이 없는데도 퇴근하지 않았던 조직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유연근무제도 활성화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아이가 아프면 돌봄 휴가도 가능하다. 그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아프다고 조퇴하면 눈치가 보여서 연가를 쓰곤 했는데 확 달라졌다”며 “회식도 거의 없지만 회식을 하더라도 밤 9시를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야근을 결정할 때도 아내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②“부모 공동육아는 당연”…바뀌는 인식

남편과 아내가 자녀양육의 부담을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는 인식은 국내에서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뚜렷하다. 세종의 총인구는 31만5136명(지난해 기준)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30대와 40대의 비중이 18.7%, 18.6%, 평균 연령은 36.6살인 ‘젊은 도시’다. 고등학교 교사인 이상민(39)씨는 2015년 세종으로 이사 왔다. 세 아이를 둔 그는 “서울에 살 때만 해도 ‘가정에 잘하는 남편·아빠’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세종에서는 평균 정도”라며 “세종에서 가족모임에 가보면 아빠들이 아이들과 정말 즐겁게 논다. 나도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려고 애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종 아빠들은 다 그러더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세종시에서 운영하는 ‘아빠와 함께하는 신체놀이’ 프로그램에 다섯살 딸 준희(가명)와 참여한 박아무개(38)씨. 중소기업에서 설계 업무를 맡은 그는 야근이 잦아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대형 프로젝트를 하느라 더욱 바빴다. 주말이라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라며 아내가 이 프로그램에 신청해줬다. 이날 다른 아이들은 아빠와 신나게 노는데, 준희는 아빠를 서먹해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 나아졌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박씨의 마음은 쓰렸다. “아내가 다른 아빠들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는데, 그냥 잔소리인 줄만 알았다. 여기 와서 보니 내가 너무 소홀했구나, 미안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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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좋은 보육·교육 인프라

세종에서 아빠 육아가 가능한 요소 중 하나는 우수한 보육·교육 인프라다. 현행법상 상시 여성 노동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노동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에서는 직장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해야 한다. 세종시에서 아이들이 직장어린이집에 다니는 비율은 16.6%로 전국 평균(3.6%)을 크게 웃돈다. 정부세종청사에만 10개의 어린이집이 있다. 특히 세종 유치원 59개 중에서 56개(94.9%)가 국공립이다. 서울 국공립유치원 비율(23.8%)의 4배, 전국 평균(52.6%)의 2배 수준이다. 새 학기가 되면 세종시에서는 국공립유치원 몇곳에서 입학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는 게 흔하다.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지난해 4월 회사 주재원으로 세종으로 이사 온 박아무개(36)씨는 첫째(5살)는 아파트 앞 국공립유치원에, 둘째(3살)는 아파트 단지 내 공립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서울에서는 수십군데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는데, 세종에서는 원하는 곳에서 모두 입학 허가를 받았다. 1년 전 세종행을 반대했던 아내는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세종에 머물자고 입장을 바꿨다. “처음엔 낯선 도시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어떻게 지내냐고, 우울증 생긴다고 걱정하더니 이제는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만난 엄마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근무하는 청사 1층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곽병배씨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보지 않아도 걱정이 없다. 직장과 한 울타리에 있으니까 어린이집을 신뢰하고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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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육아휴직 OK”…가정친화적 직장 문화

지난해 국내 민간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1만7662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의 17.8%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에 견줘 46.7% 늘어난 수치다. 세종의 경우 2017년 29명에서 지난해 80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남성 육아휴직은 민간기업보다 공직사회에서 더 일반화돼 있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한 행정부 국가공무원은 9154명(교육공무원 제외)인데, 이 가운데 남성이 29%다. 2009년 386명(11.5%)에서 지난해 2652명(29%)으로 6.9배 증가했다. 공무원의 육아휴직(1년 유급+2년 무급)이 활성화된 것은 경력을 보장하는 법적 안전장치 덕분이다. 공무원임용령 31조는 육아휴직의 경우 첫째 자녀는 부부가 각각 6개월 사용할 때, 둘째부터는 조건 없이 휴직 기간 전체를 경력(승진소요 최저연수 및 근속승진기간)으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육아휴직이 증가하면서 직장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에 자녀와 친밀도가 높아진 남성이 많아지면서 자녀양육 참여가 활성화되고, 이를 본 남성 동료와 후배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온 공무원 김아무개(40)씨는 스스로를 ‘주양육자’라고 불렀다. 대기업 엔지니어인 아내는 아침 6시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지만 김씨는 오후 6시에 ‘정시퇴근’해 아이를 돌본다. 자기 일은 확실하게 함으로써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에 직장 상사나 동료 누구도 그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다. 김씨는 “아이를 돌보는 게 직장 생활보다 힘들다는 사실에 다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우리 아이는 잘 먹지도 않고 변비도 심해서 병원을 자주 다닌다. 하루에도 몇번씩 깰 만큼 잠도 잘 못 잔다. 육아를 해본 사람들이 많아 그 고충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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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아빠도 엄마도 행복해져

아빠의 육아 참여는 성평등 제고, 아이의 창의성 향상, 출산율 제고 등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빠의 공동육아는 성평등, 나아가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사회정책으로 분류된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무너지면 고용단계에서의 성차별, 노동시장에서의 임금격차, 여성 경력단절 등이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휴직과 같은 남성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허민숙 여성학 박사는 “남성이 육아휴직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출산 후 직장 복귀가 원활하다. 노동시장에서의 성평등도 촉진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장이 평등해질수록 성별 임금격차도 해소되고 여성의 경제활동과 경력 유지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강동윤씨는 “아내 대신 육아휴직을 한번이라도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고 했다. “아내가 2007년 첫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계속 낳으면서 복직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나니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중간에 아내가 복직하고 내가 육아휴직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내도 계속 일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의 정서·두뇌발달에도 긍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아빠와 활발한 신체활동을 하면 아이의 두뇌 발달이 촉진되는 ‘아빠 효과’가 발생한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아빠는 아이에게 위험을 감수시키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신체놀이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런 놀이는 아이의 창의성이나 자기주도성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빠의 양육 분담은 엄마의 육체적, 심리적인 양육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재충전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아빠는 자녀와 유대관계가 커지면서 자신감과 안정감이 생긴다. 자녀양육을 공동으로 결정하면서 고충을 서로 이해할수록 부부관계가 돈독해져 둘째아이 출산 계획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기혼여성의 둘째 자녀 출산 계획 및 출산과 관련된 요인’ 보고서를 보면, 남편의 가사분담에 만족할수록, 자녀 교육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부부가 공동으로 할수록 둘째 자녀 출산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어 다음 출산 계획을 세울 확률이 높아진다.

세종은 전국 17개 시도 중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지난해 세종의 합계출산율은 1.57명으로 서울(0.76명)의 2.06배였다. 세종에서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 수는 3700명으로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늘었다. 나머지 지역은 모두 출생아 수가 감소했다. 이삼식 한양대 교수(정책학)는 “일반적으로 안정적 일자리, 좋은 거주환경, 풍부한 교육 인프라 등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데, 세종은 그 요건을 두루 갖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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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세종 라테파파 현상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없을까. 무엇보다 ‘정시퇴근’이 가능하고 워라밸을 강조하는 문화가 공직사회를 넘어 민간으로 확산되는 것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과 야근이 일상화돼 있다면 육아를 위한 시간을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남성 육아휴직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남성 육아휴직은 오이시디 회원국 중에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17.8%)에 머문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40%를 웃돌고 독일·벨기에 등은 20% 중반이다. 우리나라 남성 노동자가 육아휴직 사용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로는 ‘소득 감소’(41.9%)가 첫손에 꼽힌다(2014년 여성정책연구원). 실제로 오이시디 회원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에 대한 소득대체율(2016년 기준)은 32.8%에 불과하다. 노르웨이는 97.9%, 오스트리아는 80%, 스웨덴은 76%로 우리와 큰 차이가 난다.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보험과 같은 별도의 신설기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는 고용보험에서 육아휴직 급여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액수도 적고 소규모의 영세 자영업자나 임시·일용직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 같은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서는 1995년 여성은 사용할 수 없고 남성만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인 ‘아빠의 달’을 도입한 이후 아빠 육아휴직이 본격화했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밀집해 있는 우리나라 여건상 단기간에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통근시간을 단축할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영유아를 키우는 부부가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할 때 지원을 해주는 방안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

놀이전문가인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은 주변에서 육아 참여에 적극적인 아빠들 모임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는 “세종에서 부모 공동육아가 자연스러웠던 것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성향의 가족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라며 “아빠 모임을 만들어 육아 경험을 공유하면 세종에서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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